무엇을 위한 게임 논란인가
조선일보가 연일 열 편이 넘어가는 연재물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지면과 (아무도 안 보는) TV조선을 총동원해 게임을 까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나무가, 종이가 아깝다. 열 몇 편의 연재물의 핀트가 다 안 맞는다. 한심하다.
이 논조로 무엇을 얻고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엄숙함? 생산성이 높은 사회? 폭력 없는 사회? 놀이터에서 흙먼지 내며 뛰놀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로맨틱한 주장을 하는 건 아닌 게 분명하지 않나. 무엇을 얻고싶어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통제로 질서와 생산성을 높이자는 분위기를 심으려는 거면 노 땡큐다. 그건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줄여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를 줄여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고 주장해도 이건 이상하다.
게다가 근본적인 해결책도 제시를 못 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관심을 주자고 이야기는 하지만, 실제로 게임 중독 자녀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야근에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가정'이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노동시간을 줄이자, 아니면 임금을 올리자라고도 말을 못 한다. 그게 현실적이냐 아니냐는 둘째치고, 그 신문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문제는 아이들에게 집-학교-학원-학원-집-숙제-잠의 상황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원은 아이들끼리 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집에 오면 늦은 밤이라 뛰어 놀 수도 없다. 자연스레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사라지게 하고 싶으면 사교육에게 메스를 대야 한다. 하지만 모든 민주적 방법이 사교육 규제에 실패했다. 강제적인 방법도 실패했다. '우리 아이 경쟁에서 이기게 하려는 욕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규제를 해도 수요는 죽지 않는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른다. 이는 고스란히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의 목표를 입시경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것도 그 신문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
강하게 규제를 하는 건 어떨까? 규제는 또다른 대안을 만들 뿐이다. 본고사를 없애고 수능을 만들면 수능 학원이 생기고, 수능에 EBS 반영 비율을 높이면 학원이 EBS 해설 강의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물며 법으로 미성년자 대상 판매가 금지된 술 담배도 '쫌 노는' 아이들은 다 한다.
규제라고 내놓는 것들이 어떻게 깨질 수 있는지 보자. 미성년자 게임 접속을 규제하면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를 얻어낼 것이다. (방법이야 많다. 나도 그랬다.) 온라인 게임 전체를 규제하면 모바일 게임을 할 것이다. 여론의 압박 속에 자율 심의로 전환한 지 오래된 모바일 게임에 다시 강제 심의로 전환하는 짓은 볼품 없는 짓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 정말 그렇게 한다고 하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저사양 패키지 게임이 남아있다.
청소년 게임 규제를 '실효성' 있게 하고 싶으면, 차라리 우리나라에서 컴퓨터를 없애고, 게임기를, 아이팟 터치를 판매금지 시키고, 스마트폰을 없애고, 핸드폰은 전화와 문자만 되게 규제해야 한다. 그게 더 쉬울 것이다. 그만큼 규제로 대책을 만드는 게 힘들다는 얘기다.
게임 중독, 게임 폭력성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렇듯 여러 이유로 조선일보가 이야기하는 규제, 혹은 나이브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식은 틀렸다. 이게 종이가, 나무가, 잉크가, 기자들이 들인 시간이, 돈이 아까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