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보세력

가끔 자신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주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다수가 아니다. 그들은 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랄만큼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지만, 사람들은 놀랄만큼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모두가 이 사건이 '비극'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거 중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안에 대한 입장, 그건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인터넷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그가 FTA를 체결했다는 것을 지금 칭송하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칭송한다. 그의 패기를 칭송한다. 이 자리에서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없다. 아니, 잠시 유보돼 있을 뿐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이르다. 진보세력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것을 예측하기에 우리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했다. 똑같다. 역사에 예측은 없다. 확률론적 예상만 있을 뿐이다. 가끔 통찰력으로 예상을 적중시키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신기한 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추모기간 중의 예측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위험하다.

역설적으로 진보세력에게 비관론이 퍼진다. 그러지 말자. 지금 이러고 있기에, 우리가 해야 할 건 너무 많다. 어떻게 될 지 생각하기 전에, 일단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주자. 그러면서 우리의 임무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내자. 제발.

 

2.
한겨레, 그리고 친노세력

<한겨레21>은 최장집 등을 빌어 "도덕의 역설"을 이야기했다. "비도덕적 인간에게는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고, 도덕적 인간에게는 끝없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역설" ((최성진, 「위험한 칼끝, 도덕성」, 『한겨레21』, 제762호, 특별증보판 2쪽)) 이라 했다. 딱 그만큼이다. "반노에게는 친노를 요구하지 않고, '그나마' 친노에게는 끝없이 친노를 요구하는 역설"이라 해야 할까. 엄밀히 말하면 '친노'라기보단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적 지지'했고, 결국엔 실망하고 돌아선 게 진보, 정확히는 좌파 세력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조중동보다는 한겨레가 훨씬 더 얻어터지는 게 지금이다.

겉으로 보기엔.

이제 지금부터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이른바 진보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한겨레를 끊는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한겨레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거나, 애시당초 한겨레와 지향점 자체가 다른 사람일 뿐이다. 한겨레는 친노 세력을 챙겨줄 의무가 없다. 그냥, 한겨레가 여태껏 해왔던 그대로 하면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가 있었다면 이는 철저히 규명해야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과한 면이 없지 않다."는 논조를 그대로 견지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이번 주는 추모기간이었으므로, 전자를 조금 (내가 보기엔 과하게) 억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사 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하튼. 다음 주부터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뭐, 이러거나 저러거나. '굿바이 노무현'이라는 도발적인 표지를 올렸던 한겨레, 그리고 한겨레21은 당분간 친노 세력의 거센 비난을 받을 게 뻔하지만, 여기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미 나는 '극성 친노'를 설득하는 것을 오래 전에 포기했다. 내 할말이나 하련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성화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신성화된 노무현, 그건 노무현 답지 않다. 통기타 치며 상록수를 부르고, 자신의 고생을 대신 말해주는 남의 연설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 노무현, 그게 노무현 답다. 친노들도 이건 알아야 한다. 노무현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충분히 비판 가능한 존재다. 물론, 난 이걸 그들이 이해할 거란 걸 이미 포기했다. 팬, 즉 fanatic(광신자, 열광자)이라는데 뭐. 그러니, 추모기간이 끝나면, 이제 역사가의 입장에서 조금 더 열정적으로 평가해주길 바란다.

아 참고로,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는 '상대주의'" ((노무현, 「민주주의의 관용과 상대주의」, 사람사는 세상. http://www.knowhow.or.kr/speech/view.php?start=0&pri_no=999840195)) 이며, "민주주의의 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용'" ((위의 글)) 이고, "소극적 의미로 보면, 관용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생각이 다르다 하여 타도하고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주주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관용이 필요합니다." ((위의 글)) 라 주장한 사람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정말이다. 진보세력 까기 전에 직접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친노세력이여, 이게 바로 그토록 당신이 지지했던 사람의 사상이다. 생각해보기 바란다.

 

3.
노무현

시간 참 빠르다. 벌써 영결식 날이다. 솔직히 잘 와닿지 않았다. 90년생이니까. 나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처음으로 뽑은 대통령이었다'는 고백이 유난히 많았던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두 번 반 절을 하기 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어떤 느낌인지, 크게 와닿진 않았다. 토요일에 뭐 했냐 하면, 베이스 사고 동문회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뜨거운 즐거움의 에너지를 다 뽑아내고서야, 드디어 그의 서거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와닿나 싶더니, 두 번 반 절을 하고 난 다음에는... 아아, 정말 이 사람이 가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남겼던 영상들도 참 많이 봤다. 통기타 치며 노래하던 후보 시절 영상도, 5공 청문회 시절 영상도. 조금씩 눈물이 나더라.

이렇게 빨리 가실 분이 아니었다. 고인의 바람대로 새 시대의 장을 열어야 했던 사람이었다. 조금 무모했다. 보수의 저항이 거셌다. 그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그의 5년, 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합한 10년이 남았다. 보수의 행진 사이에, 조금 튀었던 시간으로 남고 말았다. 새 정치의 서막이 아닌, 구 정치 속에서의 이단이 되고 말았다.

벌써 금요일이다. 이제는 그를 영영 보내야 한다. 싫다. 하지만 벌써 몇 사람을 보내본 사람으로서, 여기서 미련을 가지는 게 쓸모 없음을 알고 있다.

어쩌면, 역사가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던 시대에 나타나, 좌파로 오인받으며 살아야 했던 진정한 의미로 보수적이었던' 사람을 이렇게 보낸다. 굿바이 노무현. 아직 당신이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지만, 이젠 편히 쉬길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의 짐은 이제 우리 모두가 짊어질 것이다.

 

사족.
그에겐 '전 대통령'이란 말보다, 그에게는 '바보', 그리고 '사람'이란 말이 더 잘 어울렸다. 차마 그에게 존댓말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도 권위주의를 싫어하던 당신이 바라는 게 이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전 대통령'이란 말을 꼬박꼬박 쓴 이유는, 그가 유독 전 대통령에 대한 어떠한 선례를 남기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어조는, 이렇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 중 경제적인 면, 그리고 많은 면에서 반대 입장을 내세웠던 이른바 '좌파 빨갱이'다. 하지만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그의 똘레랑스(tolerance; 용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관용'이란 번역어를 사용했다.) 정신은 정말이지 높이 사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뒤틀린 이념 지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이 '우파'의 딱지를 달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미 그 표현을 선점한 사람들 덕분에, 그 바람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