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헝그리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내 존재가 그렇단 말이다. 세상은 썩었어, 우리는 달려야 해, 이렇게 무작정 내 에너지를 던지기엔 나는 너무 점잖은 사람이다. "나는 핑크 플로이드를 증오한다", 이게 섹스 피스톨스로 대표되는 70년대 펑크의 정신이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핑크 플로이드를 사랑한다. 날카로움 속에 감춰진 그 치명적인 서정을 사랑한다.

6~70년대를 달궜던 '포스트 비틀즈' 시대의 선두주자는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이었다. 이 두 밴드의 팬들 사이의 논쟁은 유명하다. 당연하다. 둘의 지향점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직선적인 라이브 중심의, 멤버도 계속 바뀌었던 딥 퍼플과 미묘한 스튜디오 레코드 중심의, 존 본햄이 죽자 바로 해체해버린 레드 제플린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딥 퍼플은 싱글이 히트했고, 레드 제플린은 앨범이 히트했다는 것도 다른 점이겠다. 자, 그럼 나는 무엇을 듣느냐, 레드 제플린이다. 딥 퍼플은 거의 듣지 않는다. 왜냐고? 그들의 음악은 앨범 하나하나 다른 색채가 칠해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그럼 너네 음악은 뭐냐?'라고 물을 때 대답할 거리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은 달랐다. 그들은 그들 음악 속에 그들 특유의 서정성을 심어놓았다. 한 번 듣는 순간, 그들의 음악을 계속 떠올리게 만든다.

음악계에선 그야말로 혼돈의 세계였다고 기록될 2000년대가 끝나고, 이제 2010년대가 시작되었지만 그들의 서정성은 새로운 시대에도 빛을 발한다. 2000년대 말의 한국 주류 음악이 반복되는 멜로디와 쉬운 가사로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후크송으로 사람들을 끌었다면, 1970년대의 이들은 서정성이라는 정공법으로 사람들을 끌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레드 제플린을 듣는다.

P.S. 2008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 지미 페이지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2012 런던 올림픽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여태껏 쌓아온 문화가 녹아있는 올림픽이라. 그거, 내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