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리즘에서 시작해, 이제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쓰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예전부터 지금까지 절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귀엽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내가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일 게다. 순정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그림들은... 예나 지금이나 질색이다. 그런 스타일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끔찍하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요새 독서와 토론 수업을 들으며 매주 책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이번주의 책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학교 서점에서 찾은 이 책의 '책만드는집'판 디자인은 내가 그렇게 끔찍이 싫어했던 스타일, 그대로였다. 책 여기저기에 대놓고 박혀있는 일러스트, 파스텔 톤의 배경색에 화려한 문양(?)마저 박혀 있는 책의 페이지들... 이 책은 요새 말로 하면, 나에겐 '오그라드는' 책임이 틀림없었다. 책의 첫 부분에, 주인공이 불같은 사랑에 빠지는 부분은 그런 일러스트와 더없이 부합했고 말이다.

그런데, 내용이 그런 게 아니더라. 같이 발제를 준비하는 분이 말이 '센세이션하니 기대하고 읽으세요'였는데, 정말 그대로다. 중/고등학교 때 주입받은 것 같은 해석 방식으로 해석하고픈 욕구를 마구 주는 내용이랄까. 반전도 뭐 이런 반전이 있나 싶었다. 물론 그 반전이 아니라면 매우 라이트한 여성취향 소설이 되었겠지만, 그렇다면 이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겠지.

... 그런데 이 책으로 무엇을 토론할 수 있을까. 하아

(꼬랑지. 반전의 내용을 안 쓰려니 참 고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