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대."

이 말이 새심 사실이길 바랬던 적이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건 그저 미신일 뿐이라고. 어렸을 적 내가 보름달에게 빨리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빌어도, 그 보름달은 그저 내가 알아서 나이를 먹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줄 뿐이었다. 내 앞길을 밝혀주는 빛은 달빛이 아니었다. 골목길의 주홍 빛 나트륨등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트륨등이 발하는 주홍 빛을 받고 자랐다.

그래도, 그래도. 가끔 보름달을 볼 때, 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별이란 별은 모두 가려버린 검붉은 밤하늘에서 홀로 빛나는 건 오로지 저 밝은 보름달 뿐이지 않은가. 마치 모든 사람에게 밝은 기운을 전해줄 것 같은 그 보름달은,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매정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던 그 날, 나는 집을 나오며 보름달에게 그녀가 떠나가지 말게 해달라 빌었다. 보름달은 너무나도 따뜻한 빛을 나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가지 않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날 나를 감싼 빛은 보름달이 아니라, 비틀거리는 나를 인도해준 주홍 빛 나트륨등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