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짓기
요즘 '제노포비아'가 유행인가보다. 사실 그게 한국에서는 어색하고 있어보이는 외래어를 써줄만큼 가치 있는 사상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외국인 혐오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규정짓는 것을 참 좋아한다. 너는 외국인이야. 너는 토종 한국인이야. 150년 전이라면 여기서 끝났겠지만, 요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너는 백인이야. 너는 흑인이야. 너는 흑형(사실 아프리칸-아메리칸과 아프리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좀 웃기긴 하다.)이야. 너는 동남아야. 세상이 복잡해진만큼 규정짓기도 복잡해졌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규정지으려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 번 규정짓기 시작하면 이제 편견을 덧칠한다. 자신이 속한 범주를 교묘히 피해가면서. 조선족이 사고를 치면 그것은 조선족의 잘못이다. 한국인이 사고를 친다, 그렇다면 이제 지역을 찾는다. '개쌍도', '홍어'... 나와 같은 지역이다, 그렇다면 나랑 다른 게 무엇인지 찾는다. 어린 애들이면 '요즘 애들이란' 하며 비웃는다. 흔히 '싸이코패스'라 불리는 기질이 있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는 잡아 족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열심히 사연을 찾는다. 공감한다. 너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난 아닌데). 타자화한다. 하지만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제서야 마지막으로 백기투항한다. "왜 쟤는 문제 없었는데 너는 문제니? 네가 문제야!" 그리고 엄벌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편견을 바꾸지 않는다. 젠틀하고 (피부가) 깨끗한 사람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왜 쟤는 문제 없었는데 너는 문제니? 네가 문제야!"라는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아랍인, 동남아시아인, 조선족이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외노자 쫓아내라. 다문화는 죽었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범죄율 통계를 가져다줘도 거부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단체가 제시하는 통계는 믿을 수 없단다. 권위있는 사람이 얘기한다, 그렇다면 이제 권위주의를 부정하는 척한다.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편견을 바꾸지 않으려는 가엾은 움직임이다.
우리 사회는 퇴보했다. 몇 년 전, MBC에서 를 방송하던 시절에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정치적인 올바름'을 얻고 득세했던 게 사실이지 않나. 노골적인 외국인(정확히는 경제지표가 한국보다 떨어지는 나라 출신의 외국인) 혐오자가 자신을 이렇게 강렬히 옹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퇴보다.
그렇다면 학자들이 말하는 '어렸을 때부터 다문화 교육 하기'가 해법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의 본질은 다문화 진행 정도가 아니다. 먼저, 쓸데없는 규정짓기가 문제다. 다음으로, 경제적 잣대로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판단하는 현상 없이 이런 식의 인종주의가 나타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우열을 나누는 것이 문제다.
많은 것을 바꿔야 한다. 당장 나부터도 '내가 쟤보다는 낫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