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만 나와서 그런지, 남중과 남고 특유의 문화에 이질감을 넘어서 경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렇지. 그 뜨거운 시기에, 자기들과 비슷하게 성적인 에너지를 분출을 못하는 친구들과 6년 동안 뒹군다는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남중-남고를 나온 친구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내겐 일종의 소름돋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TV에 포르노를 틀어놓는다니. 그런 건 내가 있었던 곳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 경외감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건 일종의 안타까움이다. 이성에 대한 뒤틀린 관심을 건강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충동적으로 틀어놓는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가?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배워야 할 '배려'라는 것을 배워야 할 시기에, 몸으로 체득할 시기에, 그런 것들을 배울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 사회화라는 것은 이런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여자애들이 내신을 휩쓸어간다"는 보잘것 없는 이유로 남녀공학이라는 좋은 배움의 기회를 기피하는 것이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남자반, 여자반을 굳이 나눠가며 금남, 금녀의 구역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남녀를 나눠놓으면 학력이 향상된다? 학력 향상? 그런 건 개나 줘라. 그깟 미적분 좀 더 잘한다고 세상을 잘 살아가는 건, 암기과목에서 암기할 거 더 많이 외웠다고 세상을 잘 살아가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명문대가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려심이다.

-- 그래서, 나는 중학교때 학원에서 처음 만났던 그 친구가 그렇게 스무번이나 실수를 저지른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인간은 못되도, 그 누구도 괴물이 되지 않을 기회는 얻을 수 있어야 했다. 사족이지만, 물론 이 글이 남중-남고를 나온 사람이 다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혹은 가정교육에 따라 남중-남고를 나온 사람도 충분히 배려심을 배울 수 있다. 아니, 대부분 그런 걸 배운다. 하지만, 내가 못 본 3년 사이 유난히 마초같이 변했던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그런 배려심을 배울 기회가 지금까지 없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