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kyll2018-02-14T14:30:14+09:00https://blog.zfbe.com/mindFULL.basecampmindFULL의 블로그25th & 9th anniversary2014-03-13T17:20:00+09:002014-03-13T17:20:00+09:00https://blog.zfbe.com/%EB%B6%84%EB%A5%98%EB%90%98%EC%A7%80%20%EC%95%8A%EC%9D%8C/2014/03/13/25th-9th-anniversary<p>3월 13일에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참 기가막힌 우연이었던 것 같네요.</p>
<p>World Wide Web의 25주년과, 제 블로그의 9주년을 기념합니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3월 13일에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참 기가막힌 우연이었던 것 같네요. World Wide Web의 25주년과, 제 블로그의 9주년을 기념합니다.수상한 그녀 OST 표절 논란2014-02-25T04:06:20+09:002014-02-25T04:06:20+09:00https://blog.zfbe.com/%EB%95%8C%EB%A1%9C%EB%8A%94%20%EB%B6%84%EB%85%B8%ED%95%98%EB%A9%B0/%EC%84%B8%EC%83%81/%EB%AC%B8%ED%99%94/2014/02/25/%EC%88%98%EC%83%81%ED%95%9C-%EA%B7%B8%EB%85%80-ost-%ED%91%9C%EC%A0%88-%EB%85%BC%EB%9E%80<p>수상한 그녀 OST의 "한번 더"라는 곡은 굉장히 질이 나쁘다. 두 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번 더"가 페퍼톤스의 "Ready, Get Set, Go!"와 닮았다는 것을 반드시 느낄 수 있다. 아니, 둘 중의 한 경우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첫째, 곡의 노골적인 복사. 둘째, <strong>"페퍼톤스의 작곡교실"</strong>같은 게 생겨서 중간고사 대체 과제로 낼만한 습작.</p>
<p>그만큼 두 곡은 닮았다. 다만 시간차가 10년 날 뿐이다. <a href="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16648">"한 번 더"의 코드 진행은 "Ready, Get Set, Go!"의 코드 진행과 90% 이상 일치한다.</a> 조만 다를 뿐이다. 심지어 BPM(곡 빠르기)도 175로 일치한다. 페퍼톤스 특유의 싱코페이션도, 코드 전환 타이밍도 절반 이상 복사해왔다. 곡 구성, 진행도 일치한다. "한번 더"를 틀어놓고 "Ready, Get Set, Go!"를 불러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다른 것은 오직 멜로디다. 멜로디의 리듬도 거의 일치한다는 게 문제다.</p>
<p>[caption id="attachment_2171" align="aligncenter" width="300"]<img class="size-medium wp-image-2171" alt="어떻게 BPM마저 일치할까." src="http://blog.zfbe.com/basecamp/wp-content/uploads/2014/02/스크린샷-2014-02-25-오전-3.29.51-300x260.png" width="300" height="260" /> 하다못해 어떻게 BPM마저 일치할까. 프로그램으로 자동분석한 것이라 결과값은 실제의 배수로 분석되는데, 실제 BPM은 둘 다 175임을 쉽게 알 수 있다.[/caption]</p>
<p>잘 안 알려진 곡을 베껴와도 문제인데, 하도 많은 예능에 배경음악으로 깔려 알 사람은 다 아는 곡을 베꼈다. 잘 베껴와도 문제인데, 잘 못 베꼈다. 그렇게 유명하고 흥미로운 곡을 복사했는데, <a href="https://twitter.com/djuna01/status/435688919300964353">이렇게 재미없고 별로일 수가 있나</a> 싶을 정도다.</p>
<p>이쯤 했으면 인정할 법도 하다. <a h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2241544010310">그러나 작곡가는 표절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a> 명백히 다른 주선율, 백 번 양보해서 인정한다. 장르적 유사성? '분위기'의 유사성은 장르적 유사성이 될 수 있다. 언제부터 리듬, 화성, 코드 진행, 곡 구성을 전부 다 베낀 것이 장르적 유사성이었나? 대중음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화성 진행? '머니 코드' 진행도 아니고, 빈번한 코드 전환과 싱코페이션이 범벅된 이 곡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면 무슨 진행을 흔히 찾아볼 수 없을까? 페퍼톤스가 낸 곡이 50곡이 넘으니 그 진행이 '흔하다'고 해줘야 하나?</p>
<p>원래 모그는 <a href="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2676">믿고 듣는 음악감독</a>이었다. 그가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굉장히 실망이며, 앞으로의 행보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아리송하다면, 아래의 YouTube 영상에서 두 곡을 들어보시길. 내가 "한번 더"를 돈 내고 다운로드받아 BPM 분석까지 한 이유는, 그리고 해당 뮤지션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되는 YouTube 링크를 제공하는 이유는, <strong>이 곡이 표절임이 확실하며, 이 곡의 수익은 결국 페퍼톤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strong></p>
<p><iframe src="//www.youtube.com/embed/gjqO_zL77VE" height="315" width="420" allowfullscreen="" frameborder="0"></iframe></p>
<p>심은경 - 한번 더 (수상한 그녀 OST)</p>
<p><iframe src="//www.youtube.com/embed/BxTgck_HPe4" height="315" width="420" allowfullscreen="" frameborder="0"></iframe></p>
<p>Peppertones - Ready, Get Set, Go!</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수상한 그녀 OST의 "한번 더"라는 곡은 굉장히 질이 나쁘다. 두 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번 더"가 페퍼톤스의 "Ready, Get Set, Go!"와 닮았다는 것을 반드시 느낄 수 있다. 아니, 둘 중의 한 경우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첫째, 곡의 노골적인 복사. 둘째, "페퍼톤스의 작곡교실"같은 게 생겨서 중간고사 대체 과제로 낼만한 습작. 그만큼 두 곡은 닮았다. 다만 시간차가 10년 날 뿐이다. "한 번 더"의 코드 진행은 "Ready, Get Set, Go!"의 코드 진행과 90% 이상 일치한다. 조만 다를 뿐이다. 심지어 BPM(곡 빠르기)도 175로 일치한다. 페퍼톤스 특유의 싱코페이션도, 코드 전환 타이밍도 절반 이상 복사해왔다. 곡 구성, 진행도 일치한다. "한번 더"를 틀어놓고 "Ready, Get Set, Go!"를 불러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다른 것은 오직 멜로디다. 멜로디의 리듬도 거의 일치한다는 게 문제다. [caption id="attachment_2171" align="aligncenter" width="300"] 하다못해 어떻게 BPM마저 일치할까. 프로그램으로 자동분석한 것이라 결과값은 실제의 배수로 분석되는데, 실제 BPM은 둘 다 175임을 쉽게 알 수 있다.[/caption] 잘 안 알려진 곡을 베껴와도 문제인데, 하도 많은 예능에 배경음악으로 깔려 알 사람은 다 아는 곡을 베꼈다. 잘 베껴와도 문제인데, 잘 못 베꼈다. 그렇게 유명하고 흥미로운 곡을 복사했는데, 이렇게 재미없고 별로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이쯤 했으면 인정할 법도 하다. 그러나 작곡가는 표절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명백히 다른 주선율, 백 번 양보해서 인정한다. 장르적 유사성? '분위기'의 유사성은 장르적 유사성이 될 수 있다. 언제부터 리듬, 화성, 코드 진행, 곡 구성을 전부 다 베낀 것이 장르적 유사성이었나? 대중음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화성 진행? '머니 코드' 진행도 아니고, 빈번한 코드 전환과 싱코페이션이 범벅된 이 곡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면 무슨 진행을 흔히 찾아볼 수 없을까? 페퍼톤스가 낸 곡이 50곡이 넘으니 그 진행이 '흔하다'고 해줘야 하나? 원래 모그는 믿고 듣는 음악감독이었다. 그가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굉장히 실망이며, 앞으로의 행보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아리송하다면, 아래의 YouTube 영상에서 두 곡을 들어보시길. 내가 "한번 더"를 돈 내고 다운로드받아 BPM 분석까지 한 이유는, 그리고 해당 뮤지션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되는 YouTube 링크를 제공하는 이유는, 이 곡이 표절임이 확실하며, 이 곡의 수익은 결국 페퍼톤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은경 - 한번 더 (수상한 그녀 OST) Peppertones - Ready, Get Set, Go!블로깅2014-02-21T02:11:33+09:002014-02-21T02:11:33+09:00https://blog.zfbe.com/%EC%83%9D%EA%B0%81%EB%85%B8%ED%8A%B8/2014/02/21/%EB%B8%94%EB%A1%9C%EA%B9%85<p>예전에 한참 블로그를 열심히 할 때. 그 때 나는 어린 학생이었다. 아직 채워야 할 것 투성이였고,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내용을 열심히 썼다. 당연한 내용,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 그러나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내용. 내가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과 '현실'이란 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꽤 강렬했다. 그게 내가 그 때 블로깅을 했던 이유였다.</p>
<p>언젠가부터 블로그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피드백이 줄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순전히 관심을 받기 위함이었다면 글을 그렇게 열심히, 퇴고와 퇴고를 거쳐 쓸 필요는 없었다. 생각보다 자주 내 블로그에 들어왔다. 그러나 글쓰기 창 앞에서 느낀 것은, 하얀 화면을 채울 내용이 내 머릿속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글쓰기라는 활동은 나와 멀어졌다.</p>
<p>왜 그랬을까? 당연한 소리를 쓰는 것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차피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을 '현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한 내용을 짚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액션을 취하는 게 우선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p>
<p>그러나 요즘, 내 생각은 조금 바뀌고 있다. 하루하루 참기 힘든 말들이 오가는 상황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길을 잃을 것 같다.</p>
<p>블로그를 연지도 벌써 9년째다. 언젠가부터 시간만 셌던 것 같다. 그래도 글을 쓰긴 써야 한다. 다만, 예전과는 굉장히 다른 글이 쓰여질 것 같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누군가와 싸우기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예전에 한참 블로그를 열심히 할 때. 그 때 나는 어린 학생이었다. 아직 채워야 할 것 투성이였고,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내용을 열심히 썼다. 당연한 내용,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 그러나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내용. 내가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과 '현실'이란 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꽤 강렬했다. 그게 내가 그 때 블로깅을 했던 이유였다. 언젠가부터 블로그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피드백이 줄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순전히 관심을 받기 위함이었다면 글을 그렇게 열심히, 퇴고와 퇴고를 거쳐 쓸 필요는 없었다. 생각보다 자주 내 블로그에 들어왔다. 그러나 글쓰기 창 앞에서 느낀 것은, 하얀 화면을 채울 내용이 내 머릿속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글쓰기라는 활동은 나와 멀어졌다. 왜 그랬을까? 당연한 소리를 쓰는 것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차피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을 '현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한 내용을 짚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액션을 취하는 게 우선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내 생각은 조금 바뀌고 있다. 하루하루 참기 힘든 말들이 오가는 상황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길을 잃을 것 같다. 블로그를 연지도 벌써 9년째다. 언젠가부터 시간만 셌던 것 같다. 그래도 글을 쓰긴 써야 한다. 다만, 예전과는 굉장히 다른 글이 쓰여질 것 같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누군가와 싸우기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자유민주주의2013-11-27T13:26:30+09:002013-11-27T13:26:30+09:00https://blog.zfbe.com/%EC%83%9D%EA%B0%81%EB%85%B8%ED%8A%B8/2013/11/27/%EC%9E%90%EC%9C%A0%EB%AF%BC%EC%A3%BC%EC%A3%BC%EC%9D%98<p>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자유일까?</p>
<p>오늘의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이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소유의 자유라는 황당한 답이 돌아올 것 같아 허망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신다는 분 치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잘 아는 분이 없다는 것은 몇십년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곳에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열심히 적어보았으나, 손만 아플 것 같아서 결국 다시 지워버렸다. 그만큼 그들의 머리와 귀는 닫혀있다.</p>
<p>결국 우리는 이렇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당신들은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하나도 발전하지 못했냐고.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리더를 자처하냐고. 애석하다. 저들이 변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는 사실마냥, 굳건해보인다. 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더라도, 누군가는 그들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 생각을 멈출 것이다.</p>
<p>언젠가는. 먼 훗날의 언젠가는 그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의 정치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먼 훗날엔, 지금의 어줍잖은 자유민주주의자들도 냉정한 평가 앞에 무릎꿇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자유일까?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이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소유의 자유라는 황당한 답이 돌아올 것 같아 허망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신다는 분 치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잘 아는 분이 없다는 것은 몇십년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곳에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열심히 적어보았으나, 손만 아플 것 같아서 결국 다시 지워버렸다. 그만큼 그들의 머리와 귀는 닫혀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당신들은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하나도 발전하지 못했냐고.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리더를 자처하냐고. 애석하다. 저들이 변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는 사실마냥, 굳건해보인다. 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더라도, 누군가는 그들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 생각을 멈출 것이다. 언젠가는. 먼 훗날의 언젠가는 그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의 정치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먼 훗날엔, 지금의 어줍잖은 자유민주주의자들도 냉정한 평가 앞에 무릎꿇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하루에 한 번2013-08-06T12:01:27+09:002013-08-06T12:01:27+09:00https://blog.zfbe.com/%EB%B6%84%EB%A5%98%EB%90%98%EC%A7%80%20%EC%95%8A%EC%9D%8C/2013/08/06/%ED%95%98%EB%A3%A8%EC%97%90-%ED%95%9C-%EB%B2%88<p>뭔가 자꾸 바보가 돼가는 느낌이 들어,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번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p>
<p>보통 <a href="http://zfbe.tumblr.com">텀블러</a>에 글을 쓸 거고, 제가 특별히 더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글은 여기로 옮길 겁니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뭔가 자꾸 바보가 돼가는 느낌이 들어,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번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보통 텀블러에 글을 쓸 거고, 제가 특별히 더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글은 여기로 옮길 겁니다.큐레이션2013-08-06T11:53:04+09:002013-08-06T11:53:04+09:00https://blog.zfbe.com/%EC%83%9D%EA%B0%81%EB%85%B8%ED%8A%B8/2013/08/06/%ED%81%90%EB%A0%88%EC%9D%B4%EC%85%98<p>인터넷이 준 선물은 콘텐츠의 양이다. 그 양에 질이 담보돼있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오늘 든 생각은, 그게 진짜 문제는 아니라는 거였다.</p>
<p>신문, 책은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웹은 다르다. 페이지 하나가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신문은 매일 100개가 넘는 기사를 제공한다. 웹페이지 100개를 방문하는 것? 그건 결코 쉽지 않다. 나만 해도 RSS에서 기사 50개만 올라와도 읽기가 싫어진다.</p>
<p>신문의 최대 강점은 기사의 경중에 따른 시각적 편집이다. 큐레이션이 그들의 최대 강점이다. 그런데, 신문보다 적은 기사 수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웹에서 큐레이션의 중요도는 신문보다 더 높다. 하지만 아무도 큐레이션을 잘 하지 못 한다.</p>
<p>신문은 기사 생산자의 수없는 논의를 토대로 논조를 만든다. 그리고 논조를 바탕으로 큐레이션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한다. 웹은? 웹이 그렇게 했다가는 ‘편향성 논란’이 일어난다. 요즘 기성 언론이 포털 사이트를 때리는 것을 보라. 이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strong>큐레이터와 생산자가 분리돼있고, 큐레이터가 생산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strong>이다. 밥그릇 싸움에서 생산자가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언론이 말하는 ‘포탈의 편향성’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페이지뷰에 따른 이익 싸움이다.</p>
<p>그렇다면 생산자가 직접 웹에서 큐레이션을 할 때, 그게 좋은 결과물을 낸 적이 있는가? <strong>생산자가 웹 사이트의 큐레이터가 됐을 때, 그들은 웹의 낮은 광고 단가 때문에 최악의 선택을 한다.</strong> 기실 진짜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신문사다. 그들의 홈페이지를 보라. 당신은 그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싶은가? 악성 코드를 담은 광고와, 기사를 가리는 광고를 감수하고?</p>
<p>결국, 오늘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strong>아직도</strong> 정보를 얻는 데엔 신문이, 책이 더 낫다. <strong>문맥</strong>을 파악하는 데엔 웹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신문과 책은 텍스트 자체보다 문맥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고사당할 것이다. 어떻게든 고민해야 한다. 나도 그 고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p>
<p><em><span style="color: #888888;">this post is also posted on my <a href="http://zfbe.tumblr.com/post/57483611082">tumblr</a>.</span></em></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인터넷이 준 선물은 콘텐츠의 양이다. 그 양에 질이 담보돼있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오늘 든 생각은, 그게 진짜 문제는 아니라는 거였다. 신문, 책은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웹은 다르다. 페이지 하나가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신문은 매일 100개가 넘는 기사를 제공한다. 웹페이지 100개를 방문하는 것? 그건 결코 쉽지 않다. 나만 해도 RSS에서 기사 50개만 올라와도 읽기가 싫어진다. 신문의 최대 강점은 기사의 경중에 따른 시각적 편집이다. 큐레이션이 그들의 최대 강점이다. 그런데, 신문보다 적은 기사 수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웹에서 큐레이션의 중요도는 신문보다 더 높다. 하지만 아무도 큐레이션을 잘 하지 못 한다. 신문은 기사 생산자의 수없는 논의를 토대로 논조를 만든다. 그리고 논조를 바탕으로 큐레이션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한다. 웹은? 웹이 그렇게 했다가는 ‘편향성 논란’이 일어난다. 요즘 기성 언론이 포털 사이트를 때리는 것을 보라. 이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큐레이터와 생산자가 분리돼있고, 큐레이터가 생산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밥그릇 싸움에서 생산자가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언론이 말하는 ‘포탈의 편향성’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페이지뷰에 따른 이익 싸움이다. 그렇다면 생산자가 직접 웹에서 큐레이션을 할 때, 그게 좋은 결과물을 낸 적이 있는가? 생산자가 웹 사이트의 큐레이터가 됐을 때, 그들은 웹의 낮은 광고 단가 때문에 최악의 선택을 한다. 기실 진짜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신문사다. 그들의 홈페이지를 보라. 당신은 그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싶은가? 악성 코드를 담은 광고와, 기사를 가리는 광고를 감수하고? 결국, 오늘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정보를 얻는 데엔 신문이, 책이 더 낫다. 문맥을 파악하는 데엔 웹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신문과 책은 텍스트 자체보다 문맥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고사당할 것이다. 어떻게든 고민해야 한다. 나도 그 고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this post is also posted on my tumblr.접근성2012-12-17T07:27:11+09:002012-12-17T07:27:11+09:00https://blog.zfbe.com/%EC%83%9D%EA%B0%81%EB%85%B8%ED%8A%B8/2012/12/17/%EC%A0%91%EA%B7%BC%EC%84%B1<p>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생활은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보는 신문에 따라 성향은 달라진다.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관심사 역시 매우 다르다. 시작페이지가 네이버인 사람, 다음인 사람, 구글인 사람은 각각 웹 서핑의 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다.</p>
<p>스마트폰 홈스크린에 어떤 앱이 있는지 역시,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블로그 RSS 리더인 "Reeder"를 3페이지 정도로 옮겨놓고 있었다. 그동안 읽지 않은 블로그 글이 몇백개가 쌓여 있었다. 정보 습득은 포털이나, IT 뉴스 페이지를 오가며 하고 있더라. 자연스레 브라우저 사용 비율이 높아졌고, 쓸 데 없는 연예뉴스를 보는 빈도 역시 높아져 있었다. 이 변화는 그대로 컴퓨터 이용 패턴에도 적용됐다. 작은 접근성의 변화가 전체적인 컴퓨팅 패턴까지 바꾼 셈이다.</p>
<p>접근성은 우리의 습관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크다. 뭔가 지루한 패턴이 반복된다고 느껴지면, 의도적으로 환경에 변화를 줘보자. Dock을 바꿔보든, 작업표시줄을 바꿔보든, 바탕화면을 바꿔보든, 스마트폰 홈스크린을 바꿔보든. 아마 생각보다 많은 게 달라져있을 것이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생활은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보는 신문에 따라 성향은 달라진다.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관심사 역시 매우 다르다. 시작페이지가 네이버인 사람, 다음인 사람, 구글인 사람은 각각 웹 서핑의 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홈스크린에 어떤 앱이 있는지 역시,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블로그 RSS 리더인 "Reeder"를 3페이지 정도로 옮겨놓고 있었다. 그동안 읽지 않은 블로그 글이 몇백개가 쌓여 있었다. 정보 습득은 포털이나, IT 뉴스 페이지를 오가며 하고 있더라. 자연스레 브라우저 사용 비율이 높아졌고, 쓸 데 없는 연예뉴스를 보는 빈도 역시 높아져 있었다. 이 변화는 그대로 컴퓨터 이용 패턴에도 적용됐다. 작은 접근성의 변화가 전체적인 컴퓨팅 패턴까지 바꾼 셈이다. 접근성은 우리의 습관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크다. 뭔가 지루한 패턴이 반복된다고 느껴지면, 의도적으로 환경에 변화를 줘보자. Dock을 바꿔보든, 작업표시줄을 바꿔보든, 바탕화면을 바꿔보든, 스마트폰 홈스크린을 바꿔보든. 아마 생각보다 많은 게 달라져있을 것이다.다행이다2012-05-04T03:58:10+09:002012-05-04T03:58:10+09:00https://blog.zfbe.com/%EC%84%B8%EC%83%81/%EC%A0%95%EC%B9%98/%EC%82%AC%ED%9A%8C/2012/05/04/%EB%8B%A4%ED%96%89%EC%9D%B4%EB%8B%A4<p>1.<br />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지금 나에게 좋은 일은 언젠가는 나쁜일로 돌아올 거라고. 그 생각이 틀렸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나는 방심했다. 좋은 일에 취했다. 나태해졌다. 그리고 좋은 일에 취한 채 서성거렸다. 나태함에 취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에 대한 평가를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결과는 뻔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늘 그런 식이었다.</p>
<p>2.<br />
그래서 나는 항상 나에게 좋은 일을 경계했다. 나란 놈은 늘 그랬다. 항상 나태해졌고, 안심했다. 좋은 일은 항상 나를 나쁜 쪽으로 몰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스스로 벼랑끝에 몰았다. 그게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고 할지라도.</p>
<p>3.<br />
그래서 나는 최근 야권, 그리고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야권은 19대 총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애당초 민주통합당이 단독 과반의 가능성을 점치던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span style="color: #c0c0c0;">(비록 두 명이 불미스러운 일로 탈당했지만, 그들의 지역구와 표를 생각하면 결국 그 둘의 표는 새누리당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아올 것이란 건 누구나 잘 아는 사안이 아닌가!)</span>을 차지했다. 너무나도 처참한 패배다. 하지만 이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태하고, 오로지 심판만 이야기하고, 비전은 하나도 전달할 줄 모르던 야당에게, 상황이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계기가 된 것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한다.</p>
<p>4.<br />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총선 패배가 아닌 굉장히 다채로운 것들이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대표적이다. 통합진보당은 남이 보면 무려 붕괴의 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과의 분열 과정에도 자신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차라리 지금 털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보정당의 내홍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p>
<p>물론 '민주노동당' 세력은 왜 자신들이 분열해야했는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더이상의 실패와 깨달음은 의미가 없다. 이미 4년을 새누리당에게 넘겨주었다. 국회와 대통령 모두를 남에게 넘겨줄 것인가? 아마 그들도 그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p>
<p>그리고 그들도 대통령 후보 단일화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는 않아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쯤이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제발 그들이 무식하지는 않기를 빈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1.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지금 나에게 좋은 일은 언젠가는 나쁜일로 돌아올 거라고. 그 생각이 틀렸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나는 방심했다. 좋은 일에 취했다. 나태해졌다. 그리고 좋은 일에 취한 채 서성거렸다. 나태함에 취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에 대한 평가를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결과는 뻔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늘 그런 식이었다. 2. 그래서 나는 항상 나에게 좋은 일을 경계했다. 나란 놈은 늘 그랬다. 항상 나태해졌고, 안심했다. 좋은 일은 항상 나를 나쁜 쪽으로 몰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스스로 벼랑끝에 몰았다. 그게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고 할지라도. 3. 그래서 나는 최근 야권, 그리고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야권은 19대 총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애당초 민주통합당이 단독 과반의 가능성을 점치던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비록 두 명이 불미스러운 일로 탈당했지만, 그들의 지역구와 표를 생각하면 결국 그 둘의 표는 새누리당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아올 것이란 건 누구나 잘 아는 사안이 아닌가!)을 차지했다. 너무나도 처참한 패배다. 하지만 이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태하고, 오로지 심판만 이야기하고, 비전은 하나도 전달할 줄 모르던 야당에게, 상황이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계기가 된 것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한다. 4.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총선 패배가 아닌 굉장히 다채로운 것들이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대표적이다. 통합진보당은 남이 보면 무려 붕괴의 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과의 분열 과정에도 자신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차라리 지금 털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보정당의 내홍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노동당' 세력은 왜 자신들이 분열해야했는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더이상의 실패와 깨달음은 의미가 없다. 이미 4년을 새누리당에게 넘겨주었다. 국회와 대통령 모두를 남에게 넘겨줄 것인가? 아마 그들도 그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대통령 후보 단일화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는 않아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쯤이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제발 그들이 무식하지는 않기를 빈다.규정짓기2012-04-24T03:02:46+09:002012-04-24T03:02:46+09:00https://blog.zfbe.com/%EB%95%8C%EB%A1%9C%EB%8A%94%20%EB%B6%84%EB%85%B8%ED%95%98%EB%A9%B0/%EC%84%B8%EC%83%81/2012/04/24/%EA%B7%9C%EC%A0%95%EC%A7%93%EA%B8%B0<p>요즘 '제노포비아'가 유행인가보다. 사실 그게 한국에서는 어색하고 있어보이는 외래어를 써줄만큼 가치 있는 사상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외국인 혐오다.</p>
<p>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규정짓는 것을 참 좋아한다. 너는 외국인이야. 너는 토종 한국인이야. 150년 전이라면 여기서 끝났겠지만, 요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너는 백인이야. 너는 흑인이야. 너는 흑형<span style="color: #888888;">(사실 아프리칸-아메리칸과 아프리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좀 웃기긴 하다.)</span>이야. 너는 동남아야. 세상이 복잡해진만큼 규정짓기도 복잡해졌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규정지으려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p>
<p>한 번 규정짓기 시작하면 이제 편견을 덧칠한다. 자신이 속한 범주를 교묘히 피해가면서. 조선족이 사고를 치면 그것은 조선족의 잘못이다. 한국인이 사고를 친다, 그렇다면 이제 지역을 찾는다. '개쌍도', '홍어'... 나와 같은 지역이다, 그렇다면 나랑 다른 게 무엇인지 찾는다. 어린 애들이면 '요즘 애들이란' 하며 비웃는다. 흔히 '싸이코패스'라 불리는 기질이 있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는 잡아 족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열심히 사연을 찾는다. 공감한다. 너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난 아닌데). 타자화한다. 하지만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제서야 마지막으로 백기투항한다. "왜 쟤는 문제 없었는데 너는 문제니? 네가 문제야!" 그리고 엄벌을 요구한다.</p>
<p>그리고 그 편견을 바꾸지 않는다. 젠틀하고 (피부가) 깨끗한 사람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왜 쟤는 문제 없었는데 너는 문제니? 네가 문제야!"라는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아랍인, 동남아시아인, 조선족이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외노자 쫓아내라. 다문화는 죽었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범죄율 통계를 가져다줘도 거부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단체가 제시하는 통계는 믿을 수 없단다. 권위있는 사람이 얘기한다, 그렇다면 이제 권위주의를 부정하는 척한다.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편견을 바꾸지 않으려는 가엾은 움직임이다.</p>
<p>우리 사회는 퇴보했다. 몇 년 전, MBC에서 <!느낌표>를 방송하던 시절에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정치적인 올바름'을 얻고 득세했던 게 사실이지 않나. 노골적인 외국인<span style="color: #888888;">(정확히는 경제지표가 한국보다 떨어지는 나라 출신의 외국인)</span> 혐오자가 자신을 이렇게 강렬히 옹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퇴보다.</p>
<p>그렇다면 학자들이 말하는 '어렸을 때부터 다문화 교육 하기'가 해법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의 본질은 다문화 진행 정도가 아니다. 먼저, 쓸데없는 규정짓기가 문제다. 다음으로, 경제적 잣대로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판단하는 현상 없이 이런 식의 인종주의가 나타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우열을 나누는 것이 문제다.</p>
<p>많은 것을 바꿔야 한다. 당장 나부터도 '내가 쟤보다는 낫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요즘 '제노포비아'가 유행인가보다. 사실 그게 한국에서는 어색하고 있어보이는 외래어를 써줄만큼 가치 있는 사상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외국인 혐오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규정짓는 것을 참 좋아한다. 너는 외국인이야. 너는 토종 한국인이야. 150년 전이라면 여기서 끝났겠지만, 요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너는 백인이야. 너는 흑인이야. 너는 흑형(사실 아프리칸-아메리칸과 아프리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좀 웃기긴 하다.)이야. 너는 동남아야. 세상이 복잡해진만큼 규정짓기도 복잡해졌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규정지으려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 번 규정짓기 시작하면 이제 편견을 덧칠한다. 자신이 속한 범주를 교묘히 피해가면서. 조선족이 사고를 치면 그것은 조선족의 잘못이다. 한국인이 사고를 친다, 그렇다면 이제 지역을 찾는다. '개쌍도', '홍어'... 나와 같은 지역이다, 그렇다면 나랑 다른 게 무엇인지 찾는다. 어린 애들이면 '요즘 애들이란' 하며 비웃는다. 흔히 '싸이코패스'라 불리는 기질이 있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는 잡아 족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열심히 사연을 찾는다. 공감한다. 너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난 아닌데). 타자화한다. 하지만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제서야 마지막으로 백기투항한다. "왜 쟤는 문제 없었는데 너는 문제니? 네가 문제야!" 그리고 엄벌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편견을 바꾸지 않는다. 젠틀하고 (피부가) 깨끗한 사람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왜 쟤는 문제 없었는데 너는 문제니? 네가 문제야!"라는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아랍인, 동남아시아인, 조선족이 범죄를 저지르면 바로 "외노자 쫓아내라. 다문화는 죽었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범죄율 통계를 가져다줘도 거부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단체가 제시하는 통계는 믿을 수 없단다. 권위있는 사람이 얘기한다, 그렇다면 이제 권위주의를 부정하는 척한다.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편견을 바꾸지 않으려는 가엾은 움직임이다. 우리 사회는 퇴보했다. 몇 년 전, MBC에서 를 방송하던 시절에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정치적인 올바름'을 얻고 득세했던 게 사실이지 않나. 노골적인 외국인(정확히는 경제지표가 한국보다 떨어지는 나라 출신의 외국인) 혐오자가 자신을 이렇게 강렬히 옹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퇴보다. 그렇다면 학자들이 말하는 '어렸을 때부터 다문화 교육 하기'가 해법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의 본질은 다문화 진행 정도가 아니다. 먼저, 쓸데없는 규정짓기가 문제다. 다음으로, 경제적 잣대로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판단하는 현상 없이 이런 식의 인종주의가 나타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우열을 나누는 것이 문제다. 많은 것을 바꿔야 한다. 당장 나부터도 '내가 쟤보다는 낫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다.무엇을 위한 게임 논란인가2012-02-11T05:21:47+09:002012-02-11T05:21:47+09:00https://blog.zfbe.com/%EC%84%B8%EC%83%81/%EC%A0%95%EC%B9%98/%EC%82%AC%ED%9A%8C/2012/02/11/%EB%AC%B4%EC%97%87%EC%9D%84-%EC%9C%84%ED%95%9C-%EA%B2%8C%EC%9E%84-%EB%85%BC%EB%9E%80%EC%9D%B8%EA%B0%80<p>조선일보가 연일 열 편이 넘어가는 연재물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지면과 (아무도 안 보는) TV조선을 총동원해 게임을 까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나무가, 종이가 아깝다. 열 몇 편의 연재물의 핀트가 다 안 맞는다. 한심하다.</p>
<p>이 논조로 무엇을 얻고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엄숙함? 생산성이 높은 사회? 폭력 없는 사회? 놀이터에서 흙먼지 내며 뛰놀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로맨틱한 주장을 하는 건 아닌 게 분명하지 않나. 무엇을 얻고싶어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통제로 질서와 생산성을 높이자는 분위기를 심으려는 거면 노 땡큐다. 그건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줄여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를 줄여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고 주장해도 이건 이상하다.</p>
<p>게다가 근본적인 해결책도 제시를 못 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관심을 주자고 이야기는 하지만, 실제로 게임 중독 자녀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야근에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가정'이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노동시간을 줄이자, 아니면 임금을 올리자라고도 말을 못 한다. 그게 현실적이냐 아니냐는 둘째치고, 그 신문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p>
<p>정말 문제는 아이들에게 집-학교-학원-학원-집-숙제-잠의 상황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원은 아이들끼리 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집에 오면 늦은 밤이라 뛰어 놀 수도 없다. 자연스레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사라지게 하고 싶으면 사교육에게 메스를 대야 한다. 하지만 모든 민주적 방법이 사교육 규제에 실패했다. 강제적인 방법도 실패했다. '우리 아이 경쟁에서 이기게 하려는 욕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규제를 해도 수요는 죽지 않는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른다. 이는 고스란히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의 목표를 입시경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것도 그 신문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p>
<p>강하게 규제를 하는 건 어떨까? 규제는 또다른 대안을 만들 뿐이다. 본고사를 없애고 수능을 만들면 수능 학원이 생기고, 수능에 EBS 반영 비율을 높이면 학원이 EBS 해설 강의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물며 법으로 미성년자 대상 판매가 금지된 술 담배도 '쫌 노는' 아이들은 다 한다.</p>
<p>규제라고 내놓는 것들이 어떻게 깨질 수 있는지 보자. 미성년자 게임 접속을 규제하면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를 얻어낼 것이다. (방법이야 많다. 나도 그랬다.) 온라인 게임 전체를 규제하면 모바일 게임을 할 것이다. 여론의 압박 속에 자율 심의로 전환한 지 오래된 모바일 게임에 다시 강제 심의로 전환하는 짓은 볼품 없는 짓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 정말 그렇게 한다고 하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저사양 패키지 게임이 남아있다.</p>
<p>청소년 게임 규제를 '실효성' 있게 하고 싶으면, 차라리 우리나라에서 컴퓨터를 없애고, 게임기를, 아이팟 터치를 판매금지 시키고, 스마트폰을 없애고, 핸드폰은 전화와 문자만 되게 규제해야 한다. 그게 더 쉬울 것이다. 그만큼 규제로 대책을 만드는 게 힘들다는 얘기다.</p>
<p>게임 중독, 게임 폭력성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렇듯 여러 이유로 조선일보가 이야기하는 규제, 혹은 나이브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식은 틀렸다. 이게 종이가, 나무가, 잉크가, 기자들이 들인 시간이, 돈이 아까운 이유다.</p>{"display_name"=>"mindFULL", "login"=>"zfbe", "email"=>"contact@zfbe.com", "url"=>"http://zfbe.com"}contact@zfbe.com조선일보가 연일 열 편이 넘어가는 연재물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지면과 (아무도 안 보는) TV조선을 총동원해 게임을 까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깝다. 나무가, 종이가 아깝다. 열 몇 편의 연재물의 핀트가 다 안 맞는다. 한심하다. 이 논조로 무엇을 얻고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엄숙함? 생산성이 높은 사회? 폭력 없는 사회? 놀이터에서 흙먼지 내며 뛰놀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로맨틱한 주장을 하는 건 아닌 게 분명하지 않나. 무엇을 얻고싶어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통제로 질서와 생산성을 높이자는 분위기를 심으려는 거면 노 땡큐다. 그건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줄여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를 줄여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고 주장해도 이건 이상하다. 게다가 근본적인 해결책도 제시를 못 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관심을 주자고 이야기는 하지만, 실제로 게임 중독 자녀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야근에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가정'이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노동시간을 줄이자, 아니면 임금을 올리자라고도 말을 못 한다. 그게 현실적이냐 아니냐는 둘째치고, 그 신문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문제는 아이들에게 집-학교-학원-학원-집-숙제-잠의 상황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학원은 아이들끼리 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집에 오면 늦은 밤이라 뛰어 놀 수도 없다. 자연스레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사라지게 하고 싶으면 사교육에게 메스를 대야 한다. 하지만 모든 민주적 방법이 사교육 규제에 실패했다. 강제적인 방법도 실패했다. '우리 아이 경쟁에서 이기게 하려는 욕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규제를 해도 수요는 죽지 않는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른다. 이는 고스란히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의 목표를 입시경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것도 그 신문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 강하게 규제를 하는 건 어떨까? 규제는 또다른 대안을 만들 뿐이다. 본고사를 없애고 수능을 만들면 수능 학원이 생기고, 수능에 EBS 반영 비율을 높이면 학원이 EBS 해설 강의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물며 법으로 미성년자 대상 판매가 금지된 술 담배도 '쫌 노는' 아이들은 다 한다. 규제라고 내놓는 것들이 어떻게 깨질 수 있는지 보자. 미성년자 게임 접속을 규제하면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를 얻어낼 것이다. (방법이야 많다. 나도 그랬다.) 온라인 게임 전체를 규제하면 모바일 게임을 할 것이다. 여론의 압박 속에 자율 심의로 전환한 지 오래된 모바일 게임에 다시 강제 심의로 전환하는 짓은 볼품 없는 짓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 정말 그렇게 한다고 하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저사양 패키지 게임이 남아있다. 청소년 게임 규제를 '실효성' 있게 하고 싶으면, 차라리 우리나라에서 컴퓨터를 없애고, 게임기를, 아이팟 터치를 판매금지 시키고, 스마트폰을 없애고, 핸드폰은 전화와 문자만 되게 규제해야 한다. 그게 더 쉬울 것이다. 그만큼 규제로 대책을 만드는 게 힘들다는 얘기다. 게임 중독, 게임 폭력성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렇듯 여러 이유로 조선일보가 이야기하는 규제, 혹은 나이브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식은 틀렸다. 이게 종이가, 나무가, 잉크가, 기자들이 들인 시간이, 돈이 아까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