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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글 4개

기숙사 교육

2008/03/22 02:29, 글쓴이 mindFULL
- 학교 내 이야기입니다.

1.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우리가 하는 행동이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2.
우리는 우리의 지난 날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우리가 해왔던 행동을 누군가가 재현할 때, 우리는 그곳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3.
우리는 얼마나 책임감이 있으며, 얼마나 사려깊은가?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은 하고 있는가?

4.
우리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는가?
그리고 그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5.
우리는 언젠가부터, 미덕을 미덕이라 보지 않게 됐다. 미덕마저도 법이라 보게 됐다. 중학교때, 분명히 "법과 도덕과 예절"의 차이점을 배웠음에도, 단지 그 차이점은 시험지상에서만 유효한 차이인 양, 그렇게 간주하고 간단하게 넘기고 말았다.

6.
우리는 언젠가부터, 심하다, 심하지 않다에 대한 기준을 잃어버린 듯하다. 단지 “그 기준은 지금 내가 만드는 거야” 식으로, 거만하게 말하고만 있다. 자신의 지난 날의 모습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로.

7.
최소한, 부작용에 대해서라도 생각해야 했다. 그 부작용을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해야 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면 평소보다 훨씬 사려깊은 행동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사려깊었던 적이 있는가? 그저, 말로만, 말로만 사려깊어지려다 내부모순을 일으키지 않는가? 기숙사 교육이라는 것이, 공포의 재생산에 불과하고, 전혀 교육학적이지 않은 전달방식 덕분에 역효과가 길게 따라오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8.
그게 얼마나 편의주의적인 방식인지, 과연 얼마나 생각했는가? 그 방식이 불가피하다? 얼마나 노력했기에 그렇게 말하는가? 단지, 봐왔던 것이 그 방식이었으니까, 그 방식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상상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일대일이 더 무섭다? 당연하지. 그 접근 방식 자체가 권위적이니까. 혼내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했으니까.

9.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의 의사를 차단하고 자신이 속한 계층의 '주류' 의견만 골라 말하는 것이, 정말 의사전달을 위한 행동일까? 내부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10.
누군가는 무서워하고, 누군가는 반발한다. 단지 우리가 기분나빴다는 이유로, 우리는 누군가를 파괴해놓고, 단지 너희들이 잘못해서야, 연대책임을 져야해 식으로 이야기한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이야기하는가.

11.
2년 전, 나는 이 학교에서, 선배가 있을 수 있는 공간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선배 사이에 섞여야 할 때면, 오랜 시간동안 같이 있지 않는 한, 고개를 드는 것마저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선배라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형', '누나'란 말도 거의 쓰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정말 몇몇 분들이 아닌 이상, '형', '누나' 호칭은 쓰지 못한다.
그러다가, 요새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모습을 예전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결벽증이라 해야 할만큼의 부담을 나 자신에게 지우려 하던 나와 비교하고, 얘는 너무 앞서나가는 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마는 나를 느낀다. 이내 '아니야, 이거는 다른 엄격한 애들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거야'란 생각을 하며, 애써 변명해보다, 결국에는 나의 잘못을 쉬이 인정해버리고 만다.
나는 여기서 누구를 원망하고픈 마음은 없다. 단지, 이런 모습이 확대-재생산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뿐이다.

12.
이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큰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단지, 내가 우리 학교에서 최고학년이 되어서, 선배가 보이지 않다보니 자만심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배에 대한 부담, 선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1년 전, 2년 전과 같다. 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2008/03/22 02:29 2008/03/22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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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규제의 사디즘

2006/09/19 20:40, 글쓴이 mindFULL
머리 규제 없애고 양말 규제 하는 학교가 있다더라.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기사를 찾을 수는 없겠고,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br / br / 당신은 사디스트인가? 규제를 못해서 안달이게. 규제, 규제, 규제. 목적 없는 규제만 그딴 식으로 늘어놓는 거 보면, 당신들이 사디스트가 아닌 한에야, 난 도저히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다.br / br / 정복하고 복종시킴으로써 쾌락을 얻는 사디스트. 그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br / br / 근데, 정말 걱정되는 건. 그 사디즘은 마조히즘을 낳을 수도 있다는 거다. “나는 제한당해야해! 나는 제한당하고, 조종당하지 않고선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 이런 거 말이다.br / br / 이건 너무도 위험하지 않은가. 머리규제고 양말규제고 뭐고 그게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에 포함될만한 사항이라 생각하는가. 뭐 외국에서는 다 안하는데 우리만 하느냐는 논리가 항상 맞는 건 아니라고 해도, 이쪽에서는 그 논리가 충분히 정당하다고 보는데. 권위주의와 폭력, 그리고 반민주가 적절히 믹싱된 게 각종 제한이니 말이다.br / br / 휴우. 인권 의식의 부족. 이렇게 진단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들은, 그저 사디스트일 뿐이다. 그저. 정신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br / br / 덧. 이 글은 사디즘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의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지는 악이 아니다. 하지만 무지에서 나오는 광기는 정말 크나큰 악이다.”br /
2006/09/19 20:40 2006/09/1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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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이유

2006/07/19 20:52, 글쓴이 mindFULL
흔히 학교라는 집단은 흔히 ‘군대’에 비유되곤 한다. 학교의 겉모습에 대한 비유(연병장-운동장, 구령대-조회대, ...) 뿐만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기만 하는’ 명령의 구조까지.br / br / 잠시, 다른 이야기 좀 하자. ‘바람직한 민주화’라는 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까? 그건 바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다. 위에서 민주주의를 선물처럼 던져주는 형태는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nbsp; 권위주의 시스템과 민주주의 시스템과의 차이, 그리고 그에 따른 생활 양식의 변화……. 그 모든 것들이 완성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 아닌가.br / br / 실제로, ‘위에서 던져주는’ 민주화의 부작용을 몸소 겪은 사람들이 누구던가. 대통령을 뽑는 것만이 공화제의 필요충분조건이라 믿었던 결과는 어땠는가. 민주주의의 ‘기반’이 없다 보니, 민주주의 체제가 금방 허물어지고 박정희, 전두환 등에 의해 ‘전체주의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체제가 오고 말았으며, 극우 세력이 ‘자유민주주의’ 운운하는 개그스러운 상황이 온 것이 아닌가.br / br /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래의 의견이 위로 쉽게 전달될 수 있는가’의 여부일 것이다.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그런데, 학교는 어떻던가?/span 과연 학생의 의견이 학교 운영까지 전달될 수 있는 구조인가? 아니다. 학교의 속사정으로 들어가 보자.br / br / 학생의 의견이 전달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는 바로 학생회다. 하지만 학생회의 권한은 놀랍도록 허약하다. 학생회장 선거 때, 수많은 공약이 ‘헛공약’으로 끝나버리는 이유는 그 학생회장의 능력 탓도 있긴 있겠지만, 능력 있는 학생회장마저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던가? 그건 학생회의 권한 자체가 허약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br / br / 그렇다면, 학생회의 권한은 얼마나 허약한 걸까? 우선, 학생회는 span style=font-weight: bold아직도 법제화 되어있지 않다/span. 그 권한도 명확하지 않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학교가 많다.br / br /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교칙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 같은가? 답은 정말 복잡하다. 우선, 학생회에서 명확한 결정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학교 운영위원회, 교무회의, 교장 결제까지 거쳐야 한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과정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학생의 의견을 거를 필터가 몇개씩 있다고 생각해보라. 과연 학생의 의견이 정상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가능해질 거라 보는가?br / br / 물론 ‘학생 편에 서는’ 선생님들이 계시면 문제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과정을 그대로 국가에 적용해 보면 문제가 심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생각해보라. 입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된 형태가 과연 민주주의적인 걸까?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그렇다. 이 시스템으론, 아무 것도 못 바꾼다./span 그래서 해마다 머리제한 폐지를 외치는 학생회장이 생겨도 머리제한이 끄떡 없는 거다.br / br / 대안은 단 하나밖에 없다. 학생회를 법제화하고 교칙 수정 과정을 민주적으로 다듬는 수밖에.br /
2006/07/19 20:52 2006/07/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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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권하는 학교

2006/07/11 20:22, 글쓴이 mindFULL
학교라는 곳은, 한 나라의 기본적인 교육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 교육의 특성상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데다, 한 사람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므로.br / br /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학교에서 아직까지도 파시즘을 권하고 있다는 게 난 슬프다. 파시즘을 권한다는 말에 놀란 사람도 있을거고,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구체적인 예로 학교에서 권하는 파시즘을 살펴보자.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라?/spanbr / br / 사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양보’는 불가피하다. 이건 현실이 이상대로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다양한 의견을 한번에 다 수용할 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br / 하지만,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강요’는 폭력적이다. 기본적으로, 파시즘의 기본 원리 역시 다수를 위한 소수의 맹목적인 희생이기도 하니까.br / br / 그런데, 이러한 희생 강요를 학교에서 조장하고 있다면? 우리 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 학교는 머리 제한이 심한 학교는 아니었다. 기숙학교라는 특성상, 머리를 자르는 것이 쉬운 건 아니기 때이다. 하지만 ‘높은 분’들은 이게 탐탁지 않았나 보다.br / br / 그래서 그들이 고안해낸 방법이라는 것이 바로 ‘소수 희생 강요’. 학기 초, 학생회에게 학교는(생활지도부장은) 자신들의 목적이“머리 긴 몇몇 명만 머리를 자르게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물론, 그게 잘 될리가 없었다. 사실상 파시즘 아닌가. 다수를 위한 소수의 (맹목적인) 희생. 그걸 누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인단 말인가.br / br / 이런 상태가 몇달 가자, 학교는 본색(?)을 드러냈다. 일괄적 머리검사를 해버린 것이다. 이를 두고 학교는 (예상대로)‘몇몇명이 머리를 자르지 않으니 일괄 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란 논리를 폈다. 다수의 학생들에게 ‘피해의식’을 주고만거다(솔직히, 머리 긴 사람 리스트랍시고 가져온 목록에, 걸렸다는 게 납득할 수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날, 학생 대의원회의 분위기는 살벌했다.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일본 도쿄도의 교육은 죽었나/spanbr / br /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자주 결합하곤 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에, ‘민족’ 이데올로기를 삽입함으로써 민족의 이익, 자부심, 긍지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게 바로 파시즘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예이다.br / br / 내가 보기에, 지금 도쿄도는 span style=font-weight: bold미쳤다/span. 조회시간에 히노마루(일본의 국기. 흔히 말하는 일장기) 앞에서 기립하고, 기미가요를 부르는 것을 강요하는 건 미친 짓이라 본다. 솔직히,경례하고 싶을 때 경례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그만큼 경례하고 싶지 않을 때 경례하지 않는 것도 자유다. 이런 자유는, 자신의‘양심(신념)’에 달려있는 문제이기에, ‘양심의 자유’라 하여 철저히 보장받는 자유다.br / br / 하지만, a href=http://h21.hani.co.kr/section-021037000/2006/06/021037000200606290616030.html이 기사를 보라/a. 과연 일본 도쿄도에서 양심의 자유는 보장받고 있는가? 히노마루 앞에 기립하지 않고,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았다1고 정직 처분을 내리고, 부적격 교사 취급을 하는 건, 누가 봐도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2br / br /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분명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꼽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아마 그러한 이유를 꼽겠지. 하지만, 학교라는 걸 몇년동안 겪어보니, 이건 말뿐일 뿐, 진실은 어딘가에 묻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적인 추측까지 든다.3br / br / 난 학교에게, 당당하게 본래 목적을 밝혀달라고 말하고 싶다. 학교여, 그대의 존재 이유는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윗사람 말 잘 듣는 노예를 길러내는 것’인가?4br /
주.
  1. 일본 진보세력은 태평양 전쟁 때,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내세웠던 일본 군국주의의 아픈 추억때문에 히노마루에게 예의를 표하지 않고,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는다. 게다가 기미가요에는 천황을 숭배하는 ‘내용’의 가사까지 있다.태생은 못 속이는 건가 보다.
  2. 한국의 상황은 이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지많은 않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않았다고 처벌을 받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만, 국기의 대한 경례에 거부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기라는 상징물에 대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는게 과연 이성적인 일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3. 가수 신해철이 제기한 ‘QSA(Quit Study Association)’론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4. 이 질문은 도덕교과서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도덕교육의 파시즘』의 저자 김상봉은 그 책을 통해 현재 도덕교육은 노예를 길러내는 교육이라 분석한 바있다. 공교롭게도, 도덕교과서의 속표지보다도 먼저 나오는 건, 바로 태극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 문구이다.
2006/07/11 20:22 2006/07/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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