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 필요와 필수
div style=padding: 10px; background-color: rgb(228, 228, 228);올블로그 나의 추천 글, 기획칼럼 25번째 글입니다. 원래 25번째 글은 26번째로 미룹니다./divbr /사진기자들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br /br /나야, 사진을 취미로 찍는 사람이니 아무런 제약없이, 막 찍은 사진을 들이대도 되지만 보도용 사진은 그러한 쉬운 것이 아니다. 보도용 사진에는 사진의 ‘목적성’이 필요가 아닌 필수다. 필요와 필수의 차이, 단 한 글자 차이지만 어마어마한 차이다. 필요란 말에는 일종의 여유가 조금 들어간 말이고, 필수란 말에는 여유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말이니까.br /br /그리고 하나 더, 글을 쓰는 기자는 자신이 문장을 마음껏 만들고, 수정할 수 있지만 사진을 찍는 기자는 그러하지 못하다. 사진 밑의 설명이야 마음껏 바꿀 수 있다지만, 사진기자는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사진에 창작은, 대단히 제약적이다. 사진은 거의 무조건, 발견일 수밖에 없다. 기사에 관련된 원하는 이미지를 100% 매치시키려면 일러스트레이터가 일러스트를 그려아지. 어쩔 수 없잖나.br /br /뭐, 그건 그렇고. 후자의 내용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 필요와 필수란 게,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오는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려 한다.br /br /br /span style=font-weight: bold;1. 필요와 필수 그리고 미디어/spanbr /br /비주얼이 필요한 미디어가 있고, 비주얼이 필수인 미디어가 있다. 고전적 미디어 중에, 전자는 신문이요, 후자는 방송이다. 신문엔, 그래픽이나 사진을 쓸 필요는 있지만 그게 필수는 아니다. 그래픽이나 사진을 전혀 담지 않고 내보내는 기사가 한둘인가.br /br /하지만 방송은 그렇지 않다. 방송 뉴스에서 멘트만 내보내고, 화면을 전혀 내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전혀. 그렇게 뉴스를 내보내면 분명 방송사고 논란과 함께 방송위원회가 들이닥치리라. 그리고 이런 기사가 뜨겠지. ○○○, 뉴스 도중 화면 안 나오는 사상 초유의 방송사고 내..., 그리고 ○○○, 어설픈 설명으로 시청자 화 돋워... 정도.br /br /뭐 농담이고, 하여튼 방송에선 시청 자를 위한 비주얼은 필수다. 여기서 사진기자와 방송기자와의 차이가 시작된다. 사진기자는 효과적인 한 장면 찾거나, 아예 찾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방송기자는 어떻게든 화면을 만들어야 하므로, 게다가 내레이션 시간에 맞춰야 하므로 여러 제약을 감안하고 비주얼을 찾아야 한다. 못 찾으면, 아직도 논란거리span style=color: rgb(142, 142, 142);(난 자료화면이란 게 100% 문제가 되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자료화면이 실제 방송
내용과 연관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착각의 문제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되보면...? 느낌은 달라질 것이다.)/span인 ‘자료화면’이란 메시지와 함께, 여러 짜깁기 된 화면을 보내야 하는 거고.br /br /이런 데에서, 성공하는 기자도 있지만 실패하는 기자도 적지 않을 터. 이게 내가 방송보단 신문을 선호span style=color: rgb(142, 142, 142);(이렇게 말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더만. 그 사람들을 위한 코멘트. 내가 잡지나 신문을 인터넷 뉴스보다 훨씬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터넷 뉴스는 기사 하나하나가 같은 틀에 맞춰져 나오지만, 잡지나 신문은 그렇지 않다. 편집의 묘미가 있다. 게다가
인쇄 매체와 스크린 매체의 차이는 크다. 디자인의 한계도, 엄청나게 다르다. 스크린 매체는 디자인이 픽셀의 제약 때문에 대단히
한정적인 데다, 사용자 폰트 문제도 있어 기본 폰트로 삽질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인쇄 매체는 그게 없거든. 어차피 같은 내용인데 뭔 상관이냐 묻는 사람도 있더만, 난 그런 사람은 대단히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 어차피 같은 음악인데, 휴대용 음악 재생기(ex, MP3 player)의 디자인이 다양한 이유는 뭔가? 물론 이 질문에는, ‘후자는 패션쪽과 관련된 거니 그건 다른 문제가 아닌가’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난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편집의 묘미를 이해한다면, 그 미디어를 만든 사람의 의도마저 이해가 되거든. 이해관계도 물론이고.)/span하는 이유 중 하나다. 또 하나는, 신문은 기사를 곱씹을 수 있지만 방송은 흘러가버리기 십상이란 것일테고.br /br /br /span style=font-weight: bold;2. 필요와 필수 그리고 우리/spanbr /br /필요와 필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감상문’이란 것으로 비교해보자. 감상문이 필요라면,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것. 하지만 감상문이 필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히 수행평가란 것과 연관되면 말이지. 1점에 목숨걸어야 하는 우리는, 감상문이 필수라면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거기에 몰두하곤 한다.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고 싶건만, 그게 쉬운가. 게다가 책 등을 보지 못했다면? 우린 ‘책 안 읽고 감상문 쓰기’라는 ‘반문학적 행위’마저 저지르고 만다. 우린 그 죄책감을 ‘필수니깐’이란 이유로 쉽게 지워버린다.br /br /필요로 읽었던 책과 필수로 읽었던 책의 차이 역시 어마어마한 차이다. 필요는 나의 선택, 그리고 필수는 남의 선택이다span style=color: rgb(142, 142, 142);(꼭 그런 건 아니지만, 필수가 되기 위해선 남의 선택도 어떻게든 개입해야 하는 거니깐.)/span. 여유를 갖고 읽은 책은 가슴에 남지만, 여유 없이 읽은 책은 머리에 남는다. 읽고 싶어 읽었던 글에 대해 언급했을 때 나오는 미소와, 시험공부를 위해 열심히 봐뒀던 글에 대해 뭐라 언급했을 때 나오는 미소의 차이는 크다. 전자는 뿌듯함의 미소요, 후자는 안 좋았던 기억, 약간의 비웃음 혹은 냉소마저 더해진 차가운 미소다. 진짜로. 난 아직도 ‘스스로 터득한 지혜’란 말을 들으면 그걸 무조건 외우게 시켰던 중학교, 그리고 학원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리고 남이 만들어준 말을 답으로 무조건 외워야 했던 내 처지가 생각나면서 비웃음과 냉소의 미소가 나오고 마는걸.br /br /br /span style=font-weight: bold;3. 그래서,/spanbr /br /예술쪽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음악의 예를 들자. 돈 벌기 위해 만드는 음악이 있고, 자기만족을 위해 만드는 음악이 있다. 전자가 필수고, 후자가 필요다.br /물론, 이건 과거의 상황에서 이해해야 하는 예span style=color: rgb(142, 142, 142);(지금 가수만 하고 먹고 사는 사람, 별로 없을 걸. 좀 판이 팔려야 말이지. 다들 다운 받고 듣는다면, 가수가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span이긴 한데, 만약 신인가수가 자기만족을 위한, 철저히 자기 스타일의 음악만을 고집한다면? 그 가수는 망한다. 어떻게든 대중적 수요가 있는 음악을 한두개 정도는 만들어야만 하는 게 신인가수다. 물론 중견가수는 그렇지많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다. 성공한 중견가수는 일종의 ‘상징자본’을 나름대로 갖고 있는 거니깐.br /그래서 우린 ‘상업적인 뮤지션’을 욕하고 싶어도 욕할 수 없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게 ‘자본주의’의 함정이기도 하고.br /br /그래서, 나는 필수는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필수가 높은 효율을 불러온다는 건 맞는 말일 지도 모른다. 특히 ‘자본주의’의 성공은, 거기서 불러온 거기도 하고. 하지만, 이 필수가 망친 것도 한둘이 아니다.br /br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필요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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