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음악을 내맘대로 듣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큰 사이즈의 CD 플레이어가 필요했고, 많은 음악을 듣기 위해선 수많은 CD를 들고 다니며 일일히 갈아야 했다. CD는 그나마 걸어다니며 들을 수나 있다지만, LP는 어땠을까. 그 시절 음악은 집에서 앉아 들어야 하는 미디어였을 거다.
9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2000년이 조금 지나서까지 음악 재생기를 가지지 못했다. 내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라디오와 TV였다. 그 당시 나는 라디오를 듣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라디오보단 TV가 더 재밌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는, 단지 조각조각나 팬클럽에 avi파일로 떠돌 뿐인 '음악 프로그램'은 그 당시 내가 음악을 접했던 유일한 길이었다.
시대가 바꼈다.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쉬운 시대다.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양의 음악이 작은 MP3 재생기에 실린다. 예전의 음악 감상이 '시간을 들여' 이루어졌다면, 이제 음악 감상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아무때나' 이루어진다. 이러다 보니,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바뀐다. 이제 음악감상은 '따로 짬을 내 들어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닌, '그냥 이어폰이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걸 들으면 되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우리는 보다 많은 음악을 듣게 되었다.
여기서 작은 변화가 생긴다.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장르의 폭이 넓어진 거다.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지 않은 이상 메가히트를 하는 곡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고, 이제는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 방송에 등장하지 않는 인디음악은 예전의 '홍대앞 시끄러운 펑크'의 이미지를 벗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음악간 단순비교는 무의미해졌다.
예전의 '시끄러워야 좋은 음악이야' 식 음악 평가는 이제 더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누가누가 기타를 더 잘 치냐'는 예전엔 밴드의 '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이젠 아무도 그런 걸로 밴드의 '급'을 정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중요한 건 '곡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끄느냐'다. 앨범이 그리는 '큰 그림'이 이전보다 박한 대가를 받는 건 아쉽지만, 음악이 더 다양해진 건 좋게 봐야하지 않을까.
사족- 음악산업 구조의 왜곡은 이 글의 중심 주제와 벗어나 있으므로 따로 다루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