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테러, 된장녀 논란, 개똥녀 논란...
다 똑같다. 어차피 그 셋은, ‘정의’를 빙자한 ‘복수’와 다르지 않다. 그건, 정의가 아니다. 이해할 가치는 있겠지만, 정당화해줄 가치가 없다.
단식 투쟁? 하고싶음 해라. 정의는 실현하기 어렵기에 더 빛나는 거다. 석궁 한 방으로 실현할 만큼 손쉬운 거였다면, 이 세상엔 정의가 널렸을 걸. 게다가 사람 쏘는 건 정의라고 말할 수 없는 분야고.
지금 김명호씨의 마인드는, 악플러 마인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세상에 욕이나 늘어놓으면 나쁜 사람 없어질 거라 생각하면서 사람 마음에 구멍 뻥뻥 뚫어놓는 그 못된 마인드와, 부장 판사에게 석궁 쏘면 ‘나쁜 판결’ 없어질 거라 생각하면서 사람 몸에 구멍 뻥뻥 뚫어놓는 마인드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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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17 또 다시, 복수 (6)
- 2006/12/23 정의? 복수! (10)
- 2006/09/30 26년 - 복수, 용서, 이해 (2)
또 다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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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ghtListen @ 2007/01/1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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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는 남달랐겟지요. 수십년 노력한 교수직..
앞으로 부귀영화 따위는 누리지 못할거라는 확신을 가슴에 세기고
석궁 방아쇠를 당겻을겁니다.
나는 판사를 죽이고, 나는 사회적으로 죽고.. 일종에 동귀어진일까요-

ZF. @ 2007/01/20 15:22-

- 어쨌든, 그 방법엔 저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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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복수!
몇몇 네티즌들이 개똥녀나, 된장녀나, 여중생 폭행사건을 보고 행한 짓들은, 거의 흡사하다. 저 셋의 경우가 모두 ‘여성’을 타겟으로 잡고 있다는 것부터, 그들이 (누군가의 기준에서) ‘잘못’을 저질렀고, 몇몇 네티즌들은 열심히 돌을 던졌다. 똑같다, 식상하다.br /br /정의인 줄 알았지? 아니다, 복수다. 복수는 정의를 가장한다. 악에 대한 응보니까. 하지만, 복수가 정의일까? 박찬욱 감독은 그의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lt;친절한 금자씨gt;에서 ‘복수가 결국 구원받지 못함’을 표현하고 있다. 동의한다. 어쨌든 똑같은 죄를 지는 거니까. 눈에는 눈 - 이에는 이는 옛날에나 통할 얘기다. 복수는, 정의를 가장한 불의다. 말하자면, span style=font-weight: bold;위선/span.br /br /이봐요 몇몇 네티즌 분들, 그렇게 복수만 하고, 여론재판만 해서 모든 걸 결정지을 수 있다면 법원은 왜 있나요.br /br /br /P.S. 학교폭력, 결코 얕게 볼 문제가 아니란 건 잘 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부당한 폭력과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시선 집중은, 그리고 이러한 여론 집중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건, 더 큰 차원의 폭력의 일상화다. 그게 더 심각한 거다.span style=color: rgb(142, 142, 142); (그래서 판도라TV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고.)/span 어떻게 그게 학교폭력보다 심각하냐고? 그 개개인이 받는 트라우마의 깊이를 비교해보라. 더 이상 언급은, 사족.br /
복수,
여중생,
여중생 집단폭행,
위선,
정의,
집단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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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좋은날 @ 2006/12/2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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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돌을 던지는 것만큼 비겁한 것도 없지요. 온라인 상에서는 정의의 사자인양 행동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소심한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그런것 -. 자신이 법인냥 행동하는 삶이 올바른건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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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F. @ 2006/12/23 19:45-

- 이해는 할 수 있겠지만, 결과물에 대한 판단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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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 복수, 용서, 이해
!-- 나의 추천 글 --나는 원래 만화를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간적 여유나, 흥미 등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br /
br /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아니, 작년 겨울이었을 거다. 인터넷 만화가인 강풀은 『타이밍』을 완결했다. 그 때, 난 인터넷 연재 만화의 재미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그리고 최근 몇달간, 나는 한 작품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그게 lt;26년gt;이다.br /
br /
div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background-color: #e4e4e4strong관련 만화/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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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cartoon.media.daum.net/list/group1/kangfull26/cartoonlist.do?mn=22704amp;su=1lt;26년gt;/abr /
a href=http://cartoon.media.daum.net/list/group1/timing/cartoonlist.do?type=group1amp;mn=20896amp;su=1lt;타이밍gt;/abr /
a href=http://cartoon.media.daum.net/list/group2/mystery/cartoonlist.do?type=group2amp;mn=20885amp;su=1lt;미스테리심리썰렁물gt;/a (영화 lt;아파트gt;의 원작. 하지만 영화와 만화는 딴판이라고들 한다.)br /
a href=http://cartoon.media.daum.net/list/group2/kangpool/cartoonlist.do?type=group2amp;mn=20882amp;su=1lt;순정만화gt;/abr /
a href=http://cartoon.media.daum.net/list/group2/babo/cartoonlist.do?type=group2amp;mn=20894amp;su=1lt;순정만화 시즌 2 - 바보gt;/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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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lt;26년gt;은 끝을 맺었다. 하지만 그 결말처럼, ‘그 분’, 전두환의 역사는 아직 진행중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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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복수/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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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26년gt;의 큰 틀은 (어쨌든) 복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그들. 좋은 세상을 위한 열망은 죽음, 혹은 공포로 돌아왔고, 그들은 몇 년동안을 폭도 취급 받아야만 했다. 아, 아직도 광주 민주화 운동이 ‘폭도들의 난동’이라며 ‘민주화 운동’으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긴 계시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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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어찌됐든 폭력이다. 난 (폭력에 저항하는, ‘정당방위’로서의 폭력이 아닌 한,) 폭력의 방법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복수는, 그나마 strong이해/strong할 수 있는 폭력이다. 특히 광주의 분노, 그리고 이 작품이 표현하려 한 ‘광주의 복수’는 더더욱. 그래서 난 그들의 ‘전두환’에 대한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전두환이 죽었으면 좋겠다, 확 죽어버려라-하는 저주를 이해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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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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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26년, 그 결말/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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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26년gt;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그래도 읽으시려면 눌러주십시오.
br / br / strong사죄와 용서/strongbr / br / 이 작품의 마지막회를 흐르는 또다른 키워드는 ‘용서’다. 사죄를 권유하는 김갑세의 차분한 대사. 그리고 결국 ‘중요한 제스처’를 취하며 용서를 비는 마상열. 아니, 마지막회 말고 그 전부터 천천히 톺아보자. 김갑세의 죄책, 팀의 결성, 김갑세의 고백-사죄, 깨지는 신뢰. 힘들게 찾아온 strong이해/strong.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아니, 더욱 강해진 신뢰. 그리고 또다른 사죄, “타앙”.br / br / 잠시 일본 얘기 좀 하자. 일본은 이렇게 변명할 지도 모르겠다. 제국주의는 시대적 흐름이어서 어찌 막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명일 뿐, 사죄가 되지 못한다.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말을 몇번이고 했다는 것은 사죄가 되지 못한다. 중요한 건 상대방의 용서를 받느냐, 받지 못 하느냐다. 물론 상대방이 관대하지 못하다면. 용서는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다가가고, 행동으로 보여주어 신뢰를 만들 필요는 있다. 김갑세가 곽진배 등에게 “당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하고 사죄를 빌 때, 곽진배 등이 잠시 방황했다, 마지막에는 다시 팀에 합류하는 건 결국에는 그의 ‘진정성’을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br / br / 본론으로, 전두환씨. 사실 사죄를 빌어야 할 인물은 누가 뭐래도 전두환이다. 당시 최고 책임자로서 진정성을 담은 사죄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깟 성명서 몇 번 읽는다고 사죄가 되는 줄 아나.br / br / 하여튼, 이 작품에서 5.18때의 ‘가해자’ 중, ‘선’으로 비춰지는 사람과 ‘악’으로 비춰지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바로 사죄 유무 여부다. 그리고 작품 속의 인물들은 아직 마상열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지만, 독자들이 마상열을 악역이 아닌 또다른 피해자로 인식하는 주요한 이유는 맨 마지막의 사죄 장면 때문일 것이다.br / br / br / strong다시 이해/strongbr / br / 마지막으로, ‘이해’ 얘기 좀 하자. 강풀의 만화를 언제나 감싸고 있는 주제는 휴머니즘이다. 그 휴머니즘은 사랑, 치유의 형태(lt;순정만화gt;)로도 비춰지기도 했고, 타인을 위한 희생(lt;바보gt;)로도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lt;26년gt;에는 이런 형태의 휴머니즘이 많다고 볼 순 없다. 그럼 어느 형태란 말인가.br / br / 물론 예상 했겠지만, 나는 이해라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그저 5.18을 기억만 해달라”던 강풀. 그 기억은 사실 이해가 필요한 기억이다. 그가 선택한 방법, 복수. 이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폭력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작품 내부에선 무엇이 이해일까. 사죄가 용서로 넘어가려면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br / br / 이해. 타인을 이해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요새는 다른 의견에 대한 태도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저 존재 자체만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차선일 뿐. 결국 내가 꿈꾸는 이상은 이해다. 상대방을 알고, 이해하는 것. 난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lt;26년gt; 후유증’에서 당분간 빠져나오진 못할 것 같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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