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FULL.station

검색 :
RSS 구독 : 글 / 댓글 / 트랙백 / 글+트랙백

글 검색 결과

변화
글 3개

변화를 인지하며

2008/07/16 21:55, 글쓴이 mindFULL
내가 어렸을 적, 버스 타면 지나가던 길에, (내가 다니던 곳들은 아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것 같은 곳에, 그것도 큰 길가에 여관들(!)이 있었다. 그 이름들은 매우 촌스러웠는데, 이를테면 '경춘장', '신라장' 식이었다.

이 이름을 이렇게 말해보니, 갑자기 몇 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여관들은 중학교때, 성적 욕구로 가득찼던 친구들에게 일종의 파라다이스였던 것 같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가까운 학교를 두고 조금 먼 곳에서부터 통학하던 그 친구들이 매일 걷던 길가에 있어서인지, 마치 친구라도 된다는 듯이 '춘장이 춘장이'를 외치며 외설적인 이야기를 하던 3년 전의 동창이 기억난다. 꽤 '재미있게' 생겼던 그 친구가 특유의 '구수한 말투'로 그 여관의 이름을 말할 때, 난 어줍잖은 조숙에 빠져 '훗'  하며 엷은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늘, 우리 학교에서 1학기를 마치며 하는 행사들 중 하나인 학생대토론회가 끝났다. 뒷풀이때 신나게 소리지르다 지쳐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피곤을 달랜다며 커피 한 잔 들고 넋을 잃은 듯 버스 창가를 바라보았다. 어김없이 그 길로 들어서자,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장된 그 여관들이 보였다. 이게 웬걸. 그 여관들은 장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모텔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겨우 3년 만의 변화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글쎄. 요새는 10년이면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다.


사족. 며칠 전에 읽었던 <무한 미디어>라는 책에선 변화는 예전과 비슷한 속도지만, 우리가 요새들어 유달리 변화가 빠르다고 느끼는 건 그 어느때보다도 정신없이 화면을 전환하고, 움직이고, 진동하는 미디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요한 건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변화의 인지라는 이야기다. 내가 요새들어 이렇게 변화를 하나둘씩 '인지'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식 나이로 10대가 채 여섯 달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서? 이제 몇달만 있으면 미성년자 딱지를 완전히 떼버릴 수 있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렇게 1년이 간다면 대체 난 언제 어른이 되는거지?'라 생각했던 내가, 고3 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학기 마지막 수업이 내일이란 걸 알아버려서?
2008/07/16 21:55 2008/07/16 21:55

맨 위로

트렌드, 변화

2008/05/29 22:29, 글쓴이 mindFULL

요새들어 이상하게 내 머리를 맴도는 음악들이, 이른바 '무난한 2000년대 락음악'이다. 장르로는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찾아보니 대충 'post-grunge'나 'emo', 'post-hardcore'라고들 하나보다.

내가 이런 음악들을 왜 듣게 되었나 생각해보니 나오는 게 바로 스타크래프트 중계다. 질리도록 틀어주지 않나. 나야 원체 락을 좋아하다 보니, 배경음악용으로는 들을 때에는, 참 거부감 없고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원체 그런 류의 음악이 트렌디해서, 거부감 없이 잘 찾아오는 음악이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음악들은, '리그가 끝나면' 잘 안 듣게 된다. 보통 한 리그가 길어야 4~5달 정도 하니까, 딱 그정도가 그런 음악들의 유효기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트랜드라는 것이 그런 거겠지. 조금 잔인하게 말하면, 단물 쪽쪽 빨아가며 '맛있다~' 하며 씹다가, 언젠가는 뱉어야 하는.

덧붙임. 린킨파크 3집은, 그들이 애시당초 2000년대의 트렌드를 꽉 잡고 있던 밴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참 안 질린다. 트렌드에서 벗어난다는 것, 변화라는 것은 그런 건가보다. "솔직히 What I've Done"은 잘 안 듣기는 하는데, "The Little Things Give You Away"는 정말 신기하게도 안 질린다. 계속 듣게 된다.

2008/05/29 22:29 2008/05/29 22:29

맨 위로

[3주년 기념 포스트] 고백

2008/03/13 23:00, 글쓴이 mindFULL

진보의식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존재'? 아니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의식화'? 농담이고, 아주 기본적인 얘기로 돌아가자면, 본능과 같은 것과는 달리 의식은 결국 습득하는 것이니 그것은 어떠한 자극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자극일까 생각해보자. 장기간 노출될 수 있는 자극일 수도, 단기간 노출되는 자극일 수도 있다. 전자는 성격 및 사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격이나 교육과 같은 것일테다. 그렇다면 후자는 무엇일까?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얼마 전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서 '뒤집기'를 이야기했다. 대다수의 대중은 주류가 주입한 보편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그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고, 그 의문이 주류의식을 진보의식으로 뒤집는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는 그 글에서 한국 진보세력은 대부분 이러한 뒤집기를 한 사람이 태반이고, 기존 틀을 뒤집기만 하면 사고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만한 기회를 놓치게 되므로 대체로 한국 진보세력은 미성숙의 특징을 많이 보이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글을 읽자마자, 나를 떠올렸다. 나의 사고 형성도 이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니까. 그리고 이 글은, 그런 나의 과거에 대한 고백이요, 지금 나에 대한 반성이요, 내일의 나에 대한 약속이다.


1. 과거

내가 어렸을 때, 집에 할아버지가 계셨다. 손자였던 내가 보기엔 한없이 다정하셨던 분이셨다. 하지만 그분은 많이 보수적이셨고, 한나라당의 열렬한 지지자이셨다.

블로그에 와보신 분들은 조금 어색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땐 '착하고 말 잘 듣는 손자'였다. 보수적이라기보단 진보적이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지내셨으므로, 나는 어렸을 땐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까지의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대충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아이였다. "do something for the world under the love and peace"를 블로그 위에 걸고있는 지금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9/11 테러 당시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사실, 지지라 말하기도 뭐하다. 그냥 초등학생의 응원 정도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하고, 축구는 하나도 안 좋아했지만 월드컵 거리응원을 나갈 정도로 '애국심'이 넘치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래도, 다행히 내 사고의 성장판은 거기서 닫히지 않았다. 무려 <동아일보>나 <중앙일보>를 거부감 전혀 없이 읽긴 했었지만, 다행히도 난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 읽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그 신문이 있어서 읽었을 뿐이었고, 정치논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으레 학생들이 그렇듯, '정치하는 사람들은 왜 싸우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서 난 정치가 싫어' 정도의,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중2가 되었다. 정말로 어쩌다가, <한겨레>를 한 번 읽었다. 순전히 인터넷이나 여러 곳에서의 인식, 즉 '조중동'은 구리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 이후로 가끔씩, 지하철을 꽤 오래 타야 할때엔 꼭 <한겨레>를 사읽은 건 순전히 관성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비주류에 대한 '거부감'은 지워나갔다. 그러다 나는 중3의 문턱이라 할 수 있는, 중2 겨울방학을 맞았고, 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린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비주류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 지워낸 상태에 불과했다. 적극적으로 비주류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주류의 폭력에 대해서도 거의 생각해보질 못했다. 유승준은 ' 개xx'였고, 문희준은 '꼴에 락한다고 나대는 x신'이었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나마 조금 관대한 편이었는데, 그 관대하다는 것도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인 건 사실'이라는 자만 넘치는 태도를 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게 바로 다름에 대한 용인, 주류의 폭력에 대한 보호막과도 같은 '똘레랑스'였다. 그걸 일깨워주신 한 선생님의 강의에 나는 그저 부끄러운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부끄러움은 적극적인 반성으로 돌아왔다. 할 말이 많아졌다. 블로그를 열었고, 신문과 칼럼, 책, 특히 홍세화씨의 글을 집중해서 읽었다. 나는 점점 뜨거워졌고, 사명감이 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진지했고, 내 글은 더 진지했다. 지금 옛 글을 읽으면 민망해할 정도로.


2. 변화

그러다가, 내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오해하진 마시라. 내가 '오늘부터 나는 보수 합니다' 식으로 변절(!)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게 찾아온 변화는 마인드의 변화고, 태도의 변화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일보>에 대한 나의 태도, 그 정도가 좋겠다. 중3때, 그때는 분노와 화로 가득차있었다. 조선일보 딱지가 달린 모든 것은 다 부정했고, 사설면은 '오늘 얘들 또 무슨 짓을 하는지 좀 보자' 정도의 생각으로 보다가, 그냥 찢어버렸다. 그럼 지금은? 분노라고 하기엔 냉소고, 냉소라 하기엔 '비판적이다'는 말을 쓰는 게 더 나은 정도다. 블로그라는 매체에 대한 태도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기대와 믿음으로 지켜본 게 블로그였지만, 지금은 단지 '일반 대중의 목소리가 가장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도구 정도의 특징'까지만 인정한다. 철학이니 뭐니, 그건 사용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만 생각한다. 생각에서 거품을 뺀 셈인데, 그런 거품이 빠진 자리에 들어선 건 여유였다.


3. 여유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음악평론가는 장르음악이나 인디음악 정도를 좋아하지, 아이돌은 멸시할거라고. 락을 하는 사람, 예를 들면 신해철은 분명히 동방신기와 같은 아이돌, 죽어라 깔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해철, 동방신기 노래 좋아한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 '허그는 열라 구리지만 마이 리틀 프린세스는 참 좋소'라 말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겉멋 잔뜩 든 '가짜 음악평론가'가 아니라, 취향에 대한 애착을 가진 '진짜 음악평론가'는 단지 몇몇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거지,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들의 취향에만 맞춰주는 걸 바라진 않는다.

그래서, 죽어라 락만 듣고 다른 음악은 죽어라 까던 나는 요새 소녀시대를 듣는다(사실은 소녀시대에 푹 빠졌다). 농담은 아니고, 최대한 넓은 취향을 가지려 노력한다(다만, 한국형 R&B는 너무 비슷한 걸 많이 들어서 질렸을 뿐이고, 소시에 빠진 건 불가항력에 의해서였다;;). 비주류나 소수자에 대한 생각도, "당신의 의견 말할 권리를 위해 최대한 죽도록 싸워줄게요" 정도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던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내 태도는 앞 문장에서 '최대한 죽도록'을 삭제한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사명감이 무뎌졌다고 말할 수도 있는 노릇이겠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일수록, 난 커터칼이 필요한 데에는 커터칼을 써야지, 도끼를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단칼에 벨 수 있을 때 베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럴 때가 분명히 있다는 건 알지만, '평소' 내 생각은, 정확히 '오버하지 말자' 정도로 말할 수 있다.


4. 일치와 불일치

그래서, 내 블로그에서도 여러 변화가 생겼다. 글들에서 전체적으로 힘이 빠졌고, 가끔 '화'가 날 때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흥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이건 상당히 자연스러운 변화다. 블로그의 주인에게 생긴 변화가, 블로그에 미치지 않는 게 되레 드문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일치'만 있는 게 아니라, '불일치'도 상당하다는 거다. 이제는 날이 시퍼렇게 선 글은 올라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잔뜩 머금은 글이 올라오는 건 아니다. 나의 취향은 변하는데, 'ZF'의 취향은 여전히 고매한 것 같다. 이런 생각도 든다. 'ZF라는 블로거'가 나의 분신이 아니라, 가상의, 제조된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내가 글을 쓰는 곳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이곳, 즉 블로그고, 또 한 곳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학교 동창들만 읽을 수 있는 동창 커뮤니티 내의 개인용도 게시판이다. 이 블로그에는 보통 진지하고 '고매한' 글들이 올라온다. 나머지 글들은 모두 개인용 게시판에 올라간다. 그렇게 '걸러진' 글들을 한 번 쓰다보면, 아무래도 훨씬 쓰기 수월한, '쉬운 글(안타깝게도 그게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들을 쓰는 데 내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이 블로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글이 올라온 블로그가 아니라, '계기가 있어야만' 글이 올라오는 블로그가 되어버렸다. 이거, 골치 아프더라. 분명 '나를 위한 블로그'를 하자는 마음에, 블로그 이름도 "ZF's dream station"으로 갈아치운 나인데, ZF와 나는 점점 멀어지고만 있다. 이 블로그에서만 나를 본 사람은, 내가 "소녀시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나머지 그들의 노래와 춤을 조금씩 따라해보고, 탐앤탐스에서 커피를, 그것도 분위기 잡는 데 좋다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며 달다며 히죽거리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리며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나를 직접 만나보신 경험이 꽤 많은 블로거이신 라디오키즈님께서 내가 소시를 듣는 것을 (msn 오늘의 한마디 창에서) 보고 놀라하셨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5. 다시, 변화를 찾으며

그래서, 나는 다시 변화를 갈망한다. 7달 전의 내 다짐을 아직 기억하기 때문이다. 7달 전, 공지를 적으며 "꿈과 일상의 환승역", "오직 나를 위한" 블로그를 하자는 다짐을 했다. 너무나 당연히도, 그 다짐은 아직 유효하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분명 'ZF답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하겠지만, 당분간은 조금 더 다양하고 밝은 글을 올리려 노력하려 한다. 가장 사명감에 넘쳐서, 잘해보자, 이렇게 다짐해본 날을 기념하면서, 오히려 힘을 빼보자고 다짐하는 게 물론 어색한 모양새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게 '계기'라는 것이고, 계기는 도약을 위한 가장 밟기 좋은 발판이 아니던가.

이 글은 스프링노트 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8/03/13 23:00 2008/03/13 23:00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