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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너희가 페미니즘을 아느냐

2007/01/06 15:05, 글쓴이 mindFULL
여성가족부가 성매매 방지를 위해 벌였던 이벤트는 분명히, 큰 실수였다. 운영 방식 자체의 미숙에서 온 거라고 밖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 작은 해프닝 때문에 여성가족부가 받은 비난, 예상대로 지금은 엄청 사그라졌지만 들끓던 ‘여성가족부 폐지 여론’은 심상치 않았다. 말 그대로, 페미니즘(여성주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까이고’, 또 까인다. 페미니즘을 비판 혹은 비난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예방 이벤트’. 이 이벤트는 분명히, 큰 실수였다.

스크린샷 : 인터넷한겨레, 편집 : ZF.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중, 페미니즘을 알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전에, 페미니즘에 대해 아는 사람은 대체 몇이나 될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페미니즘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그저, 남성우월주의의 반대 항으로만 인식하고 있진 않은가? 그래서, ‘페미니즘=여성우월주의’란 공식을, 남 몰래, 아니 남 알게 세워놓고 있지 않은가?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들

1

- 페미니즘에 대한 매우 흔한 오해들
하나. 이 블로그 밑에 있는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남성이다. 하지만, 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한다. 아, 그럼 난 대단한 마조히스트(masochist,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아 성적 쾌감을 느끼는 사람)인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내가 마조히스트라는 걸 만방에 밝히는 ‘커밍아웃’?

둘. 페미니즘은 성매매를 찬성할까, 반대할까? 여기에 대답은, ‘둘 다 한다!’ 이른바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 판매 여성을 ‘희생자, 허위허식과 세뇌된 여성’으로 보며, ‘성매매 자체가 인권 침해’임을 외치지만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성 판매 여성을 ‘성 노동자, 성 전문가’로 보며 ‘성 노동 금지가 생존권 침해’라고 외친다!1 그럼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극렬 페미니스트’가 되면 ‘성매매 자체가 인권침해’이지만 ‘성 노동 금지는 생존권 침해’이니 ‘인권침해를 하자’고 말하게 되는 건가? 아, 헷갈리기 시작한다!

셋. 많은 사람들이, 다른 몇몇 ‘~이즘(ism, ~주의)’처럼 페미니즘은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길이며, 모든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그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여성가족부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긴 있잖아. 왜 페미니스트들은 자기들끼리, 원론적인 것 가지고도 논쟁을 벌이는 거지? ‘이해도’가 낮아서 그런 건가?

2
- 대체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누구나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면서, 그 어느 잘못보다도 ‘꼴불견’인 잘못이 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비판일 수 없다. ‘합리적인 판단 기준’에 입각한 ‘판단’을 하기 위해선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잘 해봤자 ‘비난’일 뿐이다. 아니면 신앙심이거나.

페미니즘은 여러 분파의 모임으로 이해해야한다
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조금 독특한 마을이어서, 일종의 ‘목표’가 있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똑같은 건 아니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나, 일종의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게, 바로 페미니즘이다.
성 평등을 실현하는 길은 다양하다. ‘행위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람도, ‘의사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람도 다 페미니스트로 묶일 수 있다. 방법론을 따져볼까? 성 평등을 실현하려면, 여성의 권익 향상시키는 방법도, 남성의 권익을 깎아내리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언급하는 ‘극렬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다양한 것들을 하나로 쉽게 묶어서 생각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2 문제는, 이런 딱지가 너무나도 쉽게 붙는다는 거다. 페미니즘을 매우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으로서, ‘극렬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 교육, 미디어, 그리고 편견
대체 이런 오해들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일차적으론 교육의 문제가 있겠다. 아무도 페미니즘을 ‘가르치지’ 않는다. 성평등에 대해, 성적 소수자에 대해 조금 언급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페미니즘이라는 게 딱 하나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닌, 너무나도 다양한 거란 걸, 그나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렇게 전혀 알지 못하면서, 기존 가치관(가부장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이념을 처음 ‘목격’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저 사람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한심하게.’ 정도일 거다. 기존 사고방식으론, ‘다른’ 사고를 이해하긴 힘드니까.

뉴스와 뉴스 댓글은, 항상 자극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묻혀 작은 기사로 전락해 버리고, 논쟁거리는 항상 톱기사가 되어 수많은 댓글의 향연을 이끈다. 내가 포털 뉴스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보는 이유가 이거다. 항상 소모적인 논쟁(?)만 이끄니까. 페미니즘에 대한 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거다. 기존 가치관과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만으로도 논쟁거리인데, 앞뒤 맥락 다 잘라놓고 항상 자극적인 언행만 큰따옴표에 묶여 기사 제목이 되어버린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이게,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의 두 번째 원인이다. 이러한 자극적인 미디어가 낳은 편견 말이다.

(아참,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과 ‘시민단체’는 항상 자극적인 운동과 시위만 하냐고 오해하는데, 그것도 여기서 생긴 문제라 본다. 잔잔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단체, 대개 묻히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어딘가엔 있다. 나도 하나 봐둔 데가 있으니까.)


‘모름’으로 생긴 편견은 풀기 힘들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계몽주의’처럼 가르치려는 방법도 있지만, 난 그 방법은 싫다. 난 당신의 성실성에 기대를 건다. 오해는 직접 알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에겐 자취를 감추기 마련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무책임하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의 성실성을 어렴풋이 기대해본다. 이 글이, 잠자고 있는 당신의 ‘성실성’을 깨우는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했기를, 진심으로 빈다.


P.S. 페미니즘도 역사가 꽤 오래된 이념이다. 위에서 언급한 급진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등의 분파 역시, 오래된 것들이다. 요새 들어선 이러한 이념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다양해지고 있다는 걸 꼭 알아두시길. 또, 고전적인 페미니즘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백인 중산층의 것’이었지만, 요즘엔 그런 것들을 페미니스트 스스로도 비판하며(‘우머니즘’이란 말도 잠깐 나왔었는데, 난 그것도 이러한 움직임 중 하나라 본다), 보다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니, 그런 오해들은 풀었음 하는 바램이다.

아참, 나도 페미니즘을 자세히, 그 분파가 어떤 이념을 갖고 있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인식이 확실히 ‘틀렸다’는 건 알고있을 뿐이다. 부족하다 욕해도 좋다. 부족한 게 나다.
주.
  1.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지음, 교양인) 235쪽
  2.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말은, 여기서 써도 좋을 듯하다.
2007/01/06 15:05 2007/01/06 15:05

이 블로그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악법을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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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2006) - 무지의 폭력, 그리고 가족

2006/07/31 00:53, 글쓴이 mindFULL
div style=padding: 10px; background-color: rgb(228, 228, 228)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영화의 내용 자체를 모르고 싶으신 분께 거슬릴만한 내용이 있긴 있습니다./div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1/spanbr /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 lt;괴물gt;, 느낌 평/spanbr / 27일 개봉한 영화 lt;괴물gt;. 이 영화가 끝날 때, 난 박수를 치고 싶었다. 정말로 이 영화, 박수 쳐주고 싶었다. 그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br / br / 난 봉준호 감독을 잘 모른다. lt;플란더스의 개gt;, lt;살인의 추억gt;, 모두 못 봤다. 이 평은 순수히 lt;괴물gt;이라는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이라는 걸 밝힌다.br / br /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여러 번 꺼내곤 했다. 내가 여태 봤던 영화들은 그랬다. lt;다섯 개의 시선gt;과 같은 옴니버스 단편이라면 모를까, 솔직히 장편 영화는 보면 볼수록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서.br / br / 그런데, lt;괴물gt;은 내게 핸드폰 볼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한 번 보기야 봤지(버릇 탓인가). 꺼내본 핸드폰이 보여준 시각은 오후 6시 10분여. 4시 35분에 시작한 영화였으니, 무려 한시간 35분이 지났던 거다. 2시간 남짓한 상영 시간이 그렇게 짧게 느껴졌다는 증거다.br / br / 그정도로 이 영화는 짜임새가 좋다. 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유머적 요소가 배치되어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 재밌다.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2/spanbr /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 lt;괴물gt;, 그리고 무지의 폭력/spanbr / lt;괴물gt;의 선악 구도는 명쾌하다. 의외였다. 하지만 그 선악 구도는 정당하다. lt;괴물gt;에서 악역을 맡은 건, 내가 보기엔 미군도, 시종일관 강두, 가족을 괴롭힌 정부쪽, 혹은 미국쪽 사람도 아니다. 그럼 괴물일까? 괴물은 아닌 것 같다. lt;괴물gt;에서 악역은, 바로 무지의 폭력이다.br / br / 영화 초반, 괴물 희생자 유족은 모두 감금당한다. 그건 전적으로 괴물이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숙주(The host)라는 추측에 기인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오는 현서의 전화. 하지만 이마저도 바이러스가 정신건강에 해를 끼쳤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주장하는 경찰. 그 후에도 계속되는 경찰과 가족의 추격, 그리고 현실논리에 빠진 사람. 이 모든 게 난 무지의 폭력으로 보였다.br / br / 사람은 일종의 선입견이 굳어지면, 그 선입견에 빠지곤 한다. 그 선입견이라는 게, 참 무섭다. 뭐라 설득을 해도, 강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빠져나오지 못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바이러스 논리’라는 거, 정말 강력하다. 모든 걸 바이러스로 설명할 수 있다. 강두가 횡설수설하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모두, 바이러스가 뇌에 작용했단 말로 설명 가능하지 않나.br / br / 난 이게 과학적 이론이란 것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한 알레고리 본다. 한번 굳어진 이론을 쓰면, 거의 모든 걸 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단 거. 반례가 제시되기 전까진. 아인슈타인이 10여년 이상을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던 이유도 그것일 거다. 종교는 안그런가. 지동설을 믿었던 갈릴레오가 그렇게 큰 수난을 겪어야 했던 이유도 이런 것 아닐까.br / br / 사실 (잘못된) 선입견이라는 것도, 일종의 무지다. 넓은 의미의. ‘속사정’, 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난 이 영화가 계속 무지의 폭력을 서술하는 것처럼 보였다.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3/spanbr /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 lt;괴물gt;, 그리고 가족/spanbr / 거의 모든 괴수영화가 그러했듯, lt;괴물gt;의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다. 그 가족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그 용감. 나는 좋았다.br / br / 뭐 가족에 대한 얘기는 워낙 많이들 하니, 난 다른,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는 가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식들로 이루어진, ‘흔한’ 가족을 ‘정상 가족’이라 부르곤 한다. 난 그 말만 들으면 치가 떨린다. 나부터가 비정상인걸. (사실 정상 가족이란 말 자체가 의문스러운게, 이른바 비정상 가족의 비율이 40%에 육박한다는 통계도 있는데. 대체 어디까지가 정상인지.)br / br /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비정상 가족’에 편견을 갖곤 한다. 교육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건 약과다. 그냥 불쌍하다고만 보곤 한다.br / br / 사실, ‘비정상 가족’의 하나로서, 솔직히 ‘정상 가족’이 부럽긴 부럽다. 어머니가 사고로 사라졌다는, 어머니의 부재가 너무나 큰 한계인 양 느껴졌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외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br / br / 그런데, 이런 ‘비정상 가족’을 너무 그렇게만 보진 말아줬음 한다. 그 가족들도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으니까. 더 끈끈한 정이 있을 수 있으니까.br / br / span style=font-weight: bold덧./span 배두나씨 멋집니다. 아주 멋져요. 오늘부터 배두나씨 팬 하렵니다.br / span style=font-weight: bold덧2./span 촬영하기 힘들었겠단 생각과 함께, 한강이 너무도 가고싶어졌다.br /
2006/07/31 00:53 2006/07/3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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