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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년 기념 포스트] 고백

2008/03/13 23:00, 글쓴이 mindFULL

진보의식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존재'? 아니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의식화'? 농담이고, 아주 기본적인 얘기로 돌아가자면, 본능과 같은 것과는 달리 의식은 결국 습득하는 것이니 그것은 어떠한 자극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자극일까 생각해보자. 장기간 노출될 수 있는 자극일 수도, 단기간 노출되는 자극일 수도 있다. 전자는 성격 및 사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격이나 교육과 같은 것일테다. 그렇다면 후자는 무엇일까?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얼마 전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서 '뒤집기'를 이야기했다. 대다수의 대중은 주류가 주입한 보편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그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고, 그 의문이 주류의식을 진보의식으로 뒤집는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는 그 글에서 한국 진보세력은 대부분 이러한 뒤집기를 한 사람이 태반이고, 기존 틀을 뒤집기만 하면 사고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만한 기회를 놓치게 되므로 대체로 한국 진보세력은 미성숙의 특징을 많이 보이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글을 읽자마자, 나를 떠올렸다. 나의 사고 형성도 이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니까. 그리고 이 글은, 그런 나의 과거에 대한 고백이요, 지금 나에 대한 반성이요, 내일의 나에 대한 약속이다.


1. 과거

내가 어렸을 때, 집에 할아버지가 계셨다. 손자였던 내가 보기엔 한없이 다정하셨던 분이셨다. 하지만 그분은 많이 보수적이셨고, 한나라당의 열렬한 지지자이셨다.

블로그에 와보신 분들은 조금 어색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땐 '착하고 말 잘 듣는 손자'였다. 보수적이라기보단 진보적이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지내셨으므로, 나는 어렸을 땐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까지의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대충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아이였다. "do something for the world under the love and peace"를 블로그 위에 걸고있는 지금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9/11 테러 당시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사실, 지지라 말하기도 뭐하다. 그냥 초등학생의 응원 정도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하고, 축구는 하나도 안 좋아했지만 월드컵 거리응원을 나갈 정도로 '애국심'이 넘치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래도, 다행히 내 사고의 성장판은 거기서 닫히지 않았다. 무려 <동아일보>나 <중앙일보>를 거부감 전혀 없이 읽긴 했었지만, 다행히도 난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 읽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그 신문이 있어서 읽었을 뿐이었고, 정치논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으레 학생들이 그렇듯, '정치하는 사람들은 왜 싸우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서 난 정치가 싫어' 정도의,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중2가 되었다. 정말로 어쩌다가, <한겨레>를 한 번 읽었다. 순전히 인터넷이나 여러 곳에서의 인식, 즉 '조중동'은 구리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 이후로 가끔씩, 지하철을 꽤 오래 타야 할때엔 꼭 <한겨레>를 사읽은 건 순전히 관성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비주류에 대한 '거부감'은 지워나갔다. 그러다 나는 중3의 문턱이라 할 수 있는, 중2 겨울방학을 맞았고, 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린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비주류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 지워낸 상태에 불과했다. 적극적으로 비주류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주류의 폭력에 대해서도 거의 생각해보질 못했다. 유승준은 ' 개xx'였고, 문희준은 '꼴에 락한다고 나대는 x신'이었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나마 조금 관대한 편이었는데, 그 관대하다는 것도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인 건 사실'이라는 자만 넘치는 태도를 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게 바로 다름에 대한 용인, 주류의 폭력에 대한 보호막과도 같은 '똘레랑스'였다. 그걸 일깨워주신 한 선생님의 강의에 나는 그저 부끄러운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부끄러움은 적극적인 반성으로 돌아왔다. 할 말이 많아졌다. 블로그를 열었고, 신문과 칼럼, 책, 특히 홍세화씨의 글을 집중해서 읽었다. 나는 점점 뜨거워졌고, 사명감이 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진지했고, 내 글은 더 진지했다. 지금 옛 글을 읽으면 민망해할 정도로.


2. 변화

그러다가, 내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오해하진 마시라. 내가 '오늘부터 나는 보수 합니다' 식으로 변절(!)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게 찾아온 변화는 마인드의 변화고, 태도의 변화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일보>에 대한 나의 태도, 그 정도가 좋겠다. 중3때, 그때는 분노와 화로 가득차있었다. 조선일보 딱지가 달린 모든 것은 다 부정했고, 사설면은 '오늘 얘들 또 무슨 짓을 하는지 좀 보자' 정도의 생각으로 보다가, 그냥 찢어버렸다. 그럼 지금은? 분노라고 하기엔 냉소고, 냉소라 하기엔 '비판적이다'는 말을 쓰는 게 더 나은 정도다. 블로그라는 매체에 대한 태도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기대와 믿음으로 지켜본 게 블로그였지만, 지금은 단지 '일반 대중의 목소리가 가장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도구 정도의 특징'까지만 인정한다. 철학이니 뭐니, 그건 사용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만 생각한다. 생각에서 거품을 뺀 셈인데, 그런 거품이 빠진 자리에 들어선 건 여유였다.


3. 여유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음악평론가는 장르음악이나 인디음악 정도를 좋아하지, 아이돌은 멸시할거라고. 락을 하는 사람, 예를 들면 신해철은 분명히 동방신기와 같은 아이돌, 죽어라 깔 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해철, 동방신기 노래 좋아한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 '허그는 열라 구리지만 마이 리틀 프린세스는 참 좋소'라 말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겉멋 잔뜩 든 '가짜 음악평론가'가 아니라, 취향에 대한 애착을 가진 '진짜 음악평론가'는 단지 몇몇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거지,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들의 취향에만 맞춰주는 걸 바라진 않는다.

그래서, 죽어라 락만 듣고 다른 음악은 죽어라 까던 나는 요새 소녀시대를 듣는다(사실은 소녀시대에 푹 빠졌다). 농담은 아니고, 최대한 넓은 취향을 가지려 노력한다(다만, 한국형 R&B는 너무 비슷한 걸 많이 들어서 질렸을 뿐이고, 소시에 빠진 건 불가항력에 의해서였다;;). 비주류나 소수자에 대한 생각도, "당신의 의견 말할 권리를 위해 최대한 죽도록 싸워줄게요" 정도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던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내 태도는 앞 문장에서 '최대한 죽도록'을 삭제한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사명감이 무뎌졌다고 말할 수도 있는 노릇이겠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일수록, 난 커터칼이 필요한 데에는 커터칼을 써야지, 도끼를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단칼에 벨 수 있을 때 베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럴 때가 분명히 있다는 건 알지만, '평소' 내 생각은, 정확히 '오버하지 말자' 정도로 말할 수 있다.


4. 일치와 불일치

그래서, 내 블로그에서도 여러 변화가 생겼다. 글들에서 전체적으로 힘이 빠졌고, 가끔 '화'가 날 때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흥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이건 상당히 자연스러운 변화다. 블로그의 주인에게 생긴 변화가, 블로그에 미치지 않는 게 되레 드문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일치'만 있는 게 아니라, '불일치'도 상당하다는 거다. 이제는 날이 시퍼렇게 선 글은 올라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잔뜩 머금은 글이 올라오는 건 아니다. 나의 취향은 변하는데, 'ZF'의 취향은 여전히 고매한 것 같다. 이런 생각도 든다. 'ZF라는 블로거'가 나의 분신이 아니라, 가상의, 제조된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내가 글을 쓰는 곳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이곳, 즉 블로그고, 또 한 곳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학교 동창들만 읽을 수 있는 동창 커뮤니티 내의 개인용도 게시판이다. 이 블로그에는 보통 진지하고 '고매한' 글들이 올라온다. 나머지 글들은 모두 개인용 게시판에 올라간다. 그렇게 '걸러진' 글들을 한 번 쓰다보면, 아무래도 훨씬 쓰기 수월한, '쉬운 글(안타깝게도 그게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들을 쓰는 데 내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이 블로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글이 올라온 블로그가 아니라, '계기가 있어야만' 글이 올라오는 블로그가 되어버렸다. 이거, 골치 아프더라. 분명 '나를 위한 블로그'를 하자는 마음에, 블로그 이름도 "ZF's dream station"으로 갈아치운 나인데, ZF와 나는 점점 멀어지고만 있다. 이 블로그에서만 나를 본 사람은, 내가 "소녀시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나머지 그들의 노래와 춤을 조금씩 따라해보고, 탐앤탐스에서 커피를, 그것도 분위기 잡는 데 좋다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며 달다며 히죽거리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리며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나를 직접 만나보신 경험이 꽤 많은 블로거이신 라디오키즈님께서 내가 소시를 듣는 것을 (msn 오늘의 한마디 창에서) 보고 놀라하셨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5. 다시, 변화를 찾으며

그래서, 나는 다시 변화를 갈망한다. 7달 전의 내 다짐을 아직 기억하기 때문이다. 7달 전, 공지를 적으며 "꿈과 일상의 환승역", "오직 나를 위한" 블로그를 하자는 다짐을 했다. 너무나 당연히도, 그 다짐은 아직 유효하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분명 'ZF답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하겠지만, 당분간은 조금 더 다양하고 밝은 글을 올리려 노력하려 한다. 가장 사명감에 넘쳐서, 잘해보자, 이렇게 다짐해본 날을 기념하면서, 오히려 힘을 빼보자고 다짐하는 게 물론 어색한 모양새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게 '계기'라는 것이고, 계기는 도약을 위한 가장 밟기 좋은 발판이 아니던가.

이 글은 스프링노트 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8/03/13 23:00 2008/03/13 23:00

이 블로그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악법을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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