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내 이야기입니다.
1.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우리가 하는 행동이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2.
우리는 우리의 지난 날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우리가 해왔던 행동을 누군가가 재현할 때, 우리는 그곳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3.
우리는 얼마나 책임감이 있으며, 얼마나 사려깊은가?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은 하고 있는가?
4.
우리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는가?
그리고 그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5.
우리는 언젠가부터, 미덕을 미덕이라 보지 않게 됐다. 미덕마저도 법이라 보게 됐다. 중학교때, 분명히 "법과 도덕과 예절"의 차이점을 배웠음에도, 단지 그 차이점은 시험지상에서만 유효한 차이인 양, 그렇게 간주하고 간단하게 넘기고 말았다.
6.
우리는 언젠가부터, 심하다, 심하지 않다에 대한 기준을 잃어버린 듯하다. 단지 “그 기준은 지금 내가 만드는 거야” 식으로, 거만하게 말하고만 있다. 자신의 지난 날의 모습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로.
7.
최소한, 부작용에 대해서라도 생각해야 했다. 그 부작용을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해야 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면 평소보다 훨씬 사려깊은 행동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사려깊었던 적이 있는가? 그저, 말로만, 말로만 사려깊어지려다 내부모순을 일으키지 않는가? 기숙사 교육이라는 것이, 공포의 재생산에 불과하고, 전혀 교육학적이지 않은 전달방식 덕분에 역효과가 길게 따라오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8.
그게 얼마나 편의주의적인 방식인지, 과연 얼마나 생각했는가? 그 방식이 불가피하다? 얼마나 노력했기에 그렇게 말하는가? 단지, 봐왔던 것이 그 방식이었으니까, 그 방식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상상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일대일이 더 무섭다? 당연하지. 그 접근 방식 자체가 권위적이니까. 혼내기 위한 목적으로 접근했으니까.
9.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의 의사를 차단하고 자신이 속한 계층의 '주류' 의견만 골라 말하는 것이, 정말 의사전달을 위한 행동일까? 내부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10.
누군가는 무서워하고, 누군가는 반발한다. 단지 우리가 기분나빴다는 이유로, 우리는 누군가를 파괴해놓고, 단지 너희들이 잘못해서야, 연대책임을 져야해 식으로 이야기한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이야기하는가.
11.
2년 전, 나는 이 학교에서, 선배가 있을 수 있는 공간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선배 사이에 섞여야 할 때면, 오랜 시간동안 같이 있지 않는 한, 고개를 드는 것마저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선배라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형', '누나'란 말도 거의 쓰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정말 몇몇 분들이 아닌 이상, '형', '누나' 호칭은 쓰지 못한다.
그러다가, 요새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모습을 예전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결벽증이라 해야 할만큼의 부담을 나 자신에게 지우려 하던 나와 비교하고, 얘는 너무 앞서나가는 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마는 나를 느낀다. 이내 '아니야, 이거는 다른 엄격한 애들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거야'란 생각을 하며, 애써 변명해보다, 결국에는 나의 잘못을 쉬이 인정해버리고 만다.
나는 여기서 누구를 원망하고픈 마음은 없다. 단지, 이런 모습이 확대-재생산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뿐이다.
12.
이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큰 손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단지, 내가 우리 학교에서 최고학년이 되어서, 선배가 보이지 않다보니 자만심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배에 대한 부담, 선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1년 전, 2년 전과 같다. 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