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이 난 질문. 나에게 묻는다. 나는 용감한가?
거의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그렇다. 나는 그다지 용감하지 않으며, 오히려 위험을 회피하려는 사람에 가깝다.
다시 돌아오는 질문. 나는 사명감을 잃어버렸는가?
역시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대답, “아니다”. 나는 사명감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의 사명감은, 세상을 뒤엎어버릴만큼 강한
행동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고 싶을 때, ‘먹힐 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먹히지 않을 확률이 가장 낮은’ 방법을 선택할 뿐이다. 승리와 패배의 이분법으로 생각하자면, 나는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지지 않을 확률이 가장 높은 선택을 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요새들어선 신랄한 비판글보다는,
차분하게 관망하며 그저 짚어보는 글을 더 많이, 블로그에 올리곤 한다.
내 글에서 공격성이 상당히 거세되어있음을 느낀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예전같았으면 날카로운 비판에서 멈췄을 글인데, 요즘 내가 쓰는 글은 날카로운 비판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할 때, 그때마저도 나는 나의 글을 날카롭게 하지 않기 위해 다듬고, 또 다듬는다. 다른 이들이 칼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 칼의 옆면을 갈 때, 나는 칼을 무디게 하기 위해 칼을 수직으로 세워 숫돌에 비빈다. 추론 과정과 생각을 보여주고, 보여주고, 또 보여주어 짐짓 조금이라도 날카로워보일 수 있는 비판에, 나의 사적인 감정과 같은 것이 실리지 않았음을 괜시리 보여주고 또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러한 나의 소심함은 나의 글에 수많은 변명, 그리고 사족을 남긴다.
물론, 애시당초 사족을 달 의무를 규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사실 사족은 쓸데 없는 덧붙임일 뿐이다. 이런 내가 만든 구속 아닌 구속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 감정이 유달리 어디론가 튀어버려 누군가를 때리고,
그 사실로 인해 나 스스로가 아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내 공격성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걸 수도 없이 목격했으므로.
그러므로, 내가 해야할 일은, 사족을 만들고, 나를 구속하고,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일 뿐...
글과 목적성
난 “그래서 어쩌라고”란 말에 ‘비호감’을 느낀다. 세상 모든 말, 모든 글이 딱히 어떤 목적이 있어야만 쓰는 것이더냐.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모든 것이 딱딱 나누어 떨어지고, 모든 것이 다 뚜렷한 목적성이 있다면. 유토피아일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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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 난 디스토피아라 본다. 여유가 없으니까. 인간적이지 못하니까. 그래서, 난 ‘무분별하게’ 내뱉어진 “그래서 어쩌라고”란 말에는 환멸까지 느낀다. 목적성. 항상 목적성이 있을 필요는 없을진데, 항상, 아무때나 그리도 찾아대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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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왜”를 묻는다는 것. 그거야말로 합리성의 추구다. 좋은 거다. 하지만, 아직 그것에 준비가 덜 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이라 대답해 줄 여유가 없는 사람들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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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가끔, 가벼운 것, 진지하지 않은 것에 환멸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본다. 뭐 굳이 내가 참견할 입장은 아니라지만, 좀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내가 90년생이니 내 세대면 평균수명이 100세는 될 수도 있을 텐데, 100년 인생, 평생 무겁게, 평생 합리적으로, 평생 명료하게 살아야 하나? 그건 너무 빡빡하고 재미 없잖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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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msn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한없이 가벼운가보다. 뭐, 이 블로그에선 꽤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한데, 어찌되었든 난 zerofish다. 필명마저도 개그, 패러디 하다 만들어진. 0魚. 이걸 왜 날 대신하는 ‘필명’으로 쓰는 걸까. 답은 하나. 그저, 느낌이 괜찮아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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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2000wkd @ 2006/09/0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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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우나 풀풀 날리지는 않도록,
만약 내가 너에게'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한다면
너는 목적의 필요성을 못느껴도 나에게는 필요하단거지.
만약 네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것이 나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고
내가 그런 손해를 보는 것이 기분이 나빠서
왜 그 이야기를 했는지
즉, 왜 내 시간을 뺐었는지
알 필요가 있지.
'그래서 어쩌라고'는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무성의하게 던지는 말투나
그 표현상의 날카로움이
더 비호감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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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지난 국어시간에 '문체반정'에 대한 이야기 잘 들었니?
열하일기~ 책 안 읽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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