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악이었다면 마음이 편했을 지도 모른다. 그저 순수한 형태의 분노만 분출해내면 되거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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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선자는 그렇지 않다. 겉으로는 착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보니, 자기 모순을 지니다 보니 그를 파악하는 데 우선 시간이 걸린다. 그 후에는 무한한 배신감뿐. 내가 그를 처음에는 좋아하다, 나중에 뒤늦게 증오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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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필연인지, 하여튼 나는 대토론회 준비 과정에서 그의 진면목을 보았다. 학생의 의견을 중시하고, 학생을 위하는 척하던 그가 보여준, 그 본모습. 순간 그가 위선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수업도 위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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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의견을 잘 들어라”는 그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과연 그는 남의 의견을 잘 들었던가. 그래. 발표수업의 형식을 끝까지 고수하는 사람이니, 잘 듣기야 하지. 근데 들으면 뭐하나? 다 씹는데. 남의 의견을 잘 들어서 부족한 점을 메꾸는 형식을 취하려 했다면 수업이 인터랙티브 해야할 것 아닌가. 하지만 남의 의견이 언제까지나 (수업 진행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자기가 원하는 ‘정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그였다는 걸 깨닫고 난 뒤, 나는 그의 수업에 참여할 마음이 사라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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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가상 공간, 그리고 자아정체성. 교과서는 가상 공간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자아 정체성 형성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span style=font-weight: bold만/span 말한다. 그걸 인정하라고... 하지만 그걸 인정하면 나는, 혹은 많은 블로거들은 너무 특별한 존재가 되고 만다. 나는 나의 자아정체성의 팔할을 블로그를 통해 확립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내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믿는다. 내 정체성의 혼돈의 시기였던 ‘어머니의 죽음’과 정신적 공백기 직후에 시작한 블로그는, 그 많은 정신적 공백을 훌륭히 채워줬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팔할은 블로그가 만든 거라 생각하는 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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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과서는 말한다. 가상 공간은 상대방을 알 수 없고... 그래서 자아정체성의 중요한 두 축 중 하나인 남이 보는 나의 정체성은 확립할 수 없고... 어쩌구 저쩌구. 난 그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가상 공간에 글 등을 남기는 건 span style=font-weight: bold사람/span이다. 로봇이 아니라 span style=font-weight: bold사람/span이란 말이다. 이걸 상상하지 못한다는 건 난 상상력 부재라 생각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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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span style=font-weight: bold상대방을 알 수 없다/span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블로그에는 그 사람의 여러 생각, 사고 방식, 생활이 녹아있다. 그만큼이면 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오프라인 모임 등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느끼는 특별한 친밀감, 그리고 다른 관계보다 더 빨리 친해지는. 그런 건 뭐란 말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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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업시간에 ‘발표’의 형식으로 이런 걸 말하려 했다. 물론 제한된 시간 내에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기에는 내 능력이 워낙 부족해 그 뜻이 100% 전달되지는 못했을 거다. 미흡한 점도 많았고. 하지만 대강의 내용은 전달이 됐을텐데. 그런데도. 발표 후, 그의 반응. “뭐...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대개 가상 공간은 자아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 역할을 끼치죠?” 교과서, 딱 그대로다. 몇년 전의 낡은 내용, 딱 그대로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질 않는 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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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142, 142, 142)(물론 교과서 집필 당시의 인터넷에는 블로그, 미니홈피 등의 이른바 ‘1인 미디어’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시대고, 지금은 나타나고, 대세로 자리잡은 시대다. 그럼 당연히 그 당시 교과서는 낡았으니 지금 상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수정이 가해져야 하는데, 왜 그대로 수용하냔 말이다!)/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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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불가. 그래. 내가 졌다. 하지만, 그건 알아두라. 발표, 토론 형식의 수업에선 “남의 의견을 잘 듣는” 것보단 “남의 의견을 수용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건 당신도 여러 번 강조한 것일 게다. 하지만. 과연 당신은 수업 과정에서 학생의 의견을 잘 수용해 내 결론을 도출했는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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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수업이라는 형식 자체가 일종의 한계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평소 당신의 태도를 생각하니 당신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겠다. 그래서 난 당신을 위선자라 생각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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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bold덧붙여./span 만약 논술이 소문대로 교수 입맛에 맞는 글, 혹은 교수 입맛에 맞는 결론, 혹은 교수 입맞에 맞는 ‘핵심 단어’의 포함 유무만을 골라 학생을 뽑는 과정이라면, 나는 논술이 필요 없다고 본다. 이 세상엔 수많은 스타일의 글이 있다. 날카로운 글, 재미있는 글, 부드러운 글, 딱딱한 글. 쉬운 단어로 쓰여진 글도 있고, 어려운 단어로 쓰여진 글도 있으며, 직관적인 글, 아니면 함축적인 글도 있고, 비유적인 글도 있기 마련이다. 그 다양한 것 중에서 자기 맘에 드는 글만 골라내 대학의 당락을 좌우하려 한다니. 난 그건 논술이 아니라 대학 교수를 위한 단체 마스터베이션 쇼라 생각한다. 표현이 너무 ‘야했나’? 아니. 딱 그만큼인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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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a J. Lee @ 2006/09/2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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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 지금 나랑 논리로 대결하자는 거냐?
라는 명대사가 있지..-

ZF. @ 2006/09/2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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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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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time @ 2006/09/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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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냥 1년 내내 수업 대충 씹었는데-_-aaa
그게 제일 현명한 듯ㅋㅋㅋ-

ZF. @ 2006/09/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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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금 그런 상태에요[...]
(때맞춰 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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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ingMachine @ 2006/10/1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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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선생님이 좋지는 않다만 (사상이 달라서)
이해는 할 수 있어
이유는 간단해 시험을 봐야 하잖아
교과서가 항상 옪진 않아
하지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대로 하지 않으면
태클거는사람 나오거든
(역시 scim 글자커밋 문제는 빨리 고쳐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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