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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그리고 월·E

2008/08/11 00:39, 글쓴이 mindFULL

저번 주에는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오랫만에 문화생활(?)을 한 셈인데, 두 영화 다 엄청난 영화였고, 결코 후회하지 않은 영화였다.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랄까. 그 두 영화는 바로 <다크 나이트>와 <월-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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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크리스천 베일(브루스 웨인/배트맨), 마이클 케인(알프레드 집사), 히스 레저(조커), 개리 올드먼(고든 청장), 아론 에크하트(하비 덴트 검사), 매기 질렌홀(레이첼 도스), 모건 프리먼(루시우스 폭스)

이 영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영화다. IMAX로 촬영된 여러 시퀀스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고, 그걸 IMAX 전용관에서 봤을 때1의 감동 역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어마어마함'은 그 내용에 있다.

먼저, 조커. 정말 이 배우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세밀한 감정 연기를 했던 히스 레저인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히스 레저의 조커는 어마어마했다. 올해 1월,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에 글을 남긴 기억이 나는데, 그 안타까움이 결코 헛되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2 조커는 정말, 순수한 악이었다. 관객에게 주어진 정보는 전혀 없었다. 과거 이야기는 전혀 믿을만하지 않았고, 그의 신상정보따위는 전혀 등장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에 혼돈을 부여하는,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달까. 하나의 전위예술가 같아 보였던 <배트맨>(1989)에서 조커를 연기했던 잭 니콜슨이 이 조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영시간은 2시간 30분에 육박한다. 그 시간동안 조커가, 조커가 영향을 미치거나 그 자신을 투사한 모든 존재가 한 행동 하나하나를 보는 건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단지 정의라는 것을 위해 모든 선을 넘어버린 배트맨과 하비 덴트. 그리고 이들을 기다리는 추락. 그들은 고뇌하거나 타락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건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끝난 후, 난 그야말로 힘이 쭉 빠진 상태로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앉아만 있었고, 깊은 허무감 속에 터벅터벅 극장을 걸어나왔다. 정말 얼이 빠진 채로. 집에 가려 지하철역에 왔을 때, 버스카드를 잃어버린 걸 깨달았다. 멍-하더라. 현금도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며, 계속 그 영화 생각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었으니까. 파괴와 살인, 납치 비디오, '선을 넘어버린' 배트맨, 도덕을 버리면서까지 조커를 응징하려는 배트맨, 조커의 의도대로 타락해 배트맨을 위협하는 하비 덴트, 그리고 몰락. 테러, 이라크 무장단체의 납치 비디오, 테러와의 전쟁, 아부 그라이브와 패트리어트 법을 비롯한 미국의 독선, 이라크, (전쟁 이후) 지지율 바닥을 걷는 부시. 이건 현실이었다. "슈퍼맨이 미국 내에서 보는 미국이라면, 배트맨은 미국 밖에서 보는 미국이다."라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다. 이건 몰락해가는 미국을 그대로 보여준 영화다. 엄청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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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 (WALL·E), 2008
감독 - 앤드류 스탠튼
목소리 출연 - 밴 버트3(WALL·E, M-O), 엘리샤 나이트(EVE), 제프 갈린(선장), 프레드 윌리어드(BnL CEO), MacInTalk4(AUTO), 존 라첸버그5(존), 케이티 나지미(메리), 시고니 위버(컴퓨터)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영화다. <다크 나이트>가 나를 2시간 30분동안 고문했다면, 이 영화는 1시간 40분동안 나를 어루만져줬다.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월·E와 이브. 그들이 만들어내는 감동. 따뜻한 웃음. 이 영화는 글로 표현해선 안될 것 같은 영화다. 이런 미묘한 감정들은 글로 표현하면 할수록 저 멀리 사라지는 법이니.

사실 이 영화, 스토리도 참 뻔하다. 분석하려 들면 치밀해서 분석할 수록 감탄이 드는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난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까려면 정말이지, 엄청난 냉심장이 되어야 하겠구나, 그만큼 이 영화가 가진 치유의 힘, '인간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포근한 힘은 실로 대단한 거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P.S.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모임을 열어주신 라디오키즈님께 감사하구요, 모임에서 만난 분들, 참 즐거웠습니다. :)

주.
  1. 나는 이 영화를 CGV용산 IMAX관에서 봤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무려 G열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어마어마하더라. 일주일 전부터 예매한 게 참 뿌듯하게 느껴졌었다. 오프닝씬이나 홍콩 장면을 볼 땐 말이다. 물론 그 이후는...
  2.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이 히스 레저가 영화 촬영 도중에 죽었다는 건데, 히스 레저는 영화 촬영 도중 죽은 게 아니라, 영화 촬영이 모두 끝난 후에 죽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이 적어도 촬영 분량에 있어서는 이 영화에 미친 건 없다.
  3. <스타 워즈>에서 광선검 사운드, R2-D2의 사운드 등을 만들고, <인디아나 존스>의 채찍질 소리 등을 만든 분이다.
  4. 맞다. Mac OS X의 스크린리더 프로그램 말이다
  5. 이 영화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픽사 전 영화 출연이란 기록은 이번에도 이어가신다.
2008/08/11 00:39 2008/08/1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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