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가족에게 할아버지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 느낌은 얄미움과 약간의 반감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욕심이 많은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분께서 주무시던 방 '안방'에 묻힌 보일러 관은 두껍디 두꺼웠고, 지금 내가 자는, 예전엔 부모님이 주무시던 방에 묻힌 보일러 관은 얇디 얇았다. 그래서인지, 방에서 약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며칠 전, 핸드폰 충전기 때문에 안방에 들어갔을 때 느낌은... 더운 느낌이었다. 이럴 땐 참... 얄미운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보수적인 분이었다. 김대중이 TV에 나왔다, 그럼 욕 하고 보는 거다. 투표 한다, 그럼 한나라당 찍고 보는 거다. 그런 분이었다. 반감을 느낄 정도로. 그래서일까, 우리 집에서 한나라당 찍는 분은 없는 것 같다.
2.
교통사고가 났을 때, 모든 책임은 그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이유가 뭐였든, 가해 차량은 그 차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사고에서 만약 우리가 피해자였다면 우리 집안은 그 차를 무지 욕했을 거다. 그럴 수가 없었다. 인명피해가 일어난 차는 우리 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가해자였기 때문에.
그래서 할아버지를 욕해야 했을까. 그럴 수도 없었다. 가족이니까. 사고 여파가 얼마나 심했든, 우린 그분에게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없던 그분께서 그 사고가 어떤 결과를 일으켰는지 알면 그분이 느끼실 책임감의 깊이가 너무 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 나는 막내삼촌을 따라 장례식장 옥상으로 올라갔었다. 담배를 피지 않던 막내삼촌은 그날 딱 한 번, 처음으로 담배를 피셨다. 안타까움의 자리. 그 자리에 원망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분이 남긴 마지막 유산. 그건 어쩌면 원망하지 말라는 건 아니었을까.



















2008/11/16 2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