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4월, 2010

개똥 철학

4월 29th, 2010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양보해도 삼성이 주장하는 무노조라는 거, 그거는 개똥 철학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걸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웃기고, 그런 주장을 했던, 기업가로서는 반드시 챙겨야 할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빵점짜리인 사람을 훌륭한 기업가라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신문이 우리나라 신문 업계 2위를 다툰다는 사실도 참 부끄럽다.

무노조, 그건 안 된다. 아니, 그게 삼성이 주장하는 대로 노조를 만들 필요가 없는 기업으로서의 ‘비노조’ 경영이라면 모를까. 노동자들이 필요성을 느껴서 노조를 만들려 해도 그걸 억지로 막는, ‘비’노조를 넘어선 ‘불’노조를 한다면, 그건 틀린 거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월경을 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라면, 암에 걸려도 호소할 데 없다면, 그래서 외부 언론과 접촉할 용기씩이나 낼 필요가 있는 기업이라면, 그런 기업은 실패한 기업이다. 아니, 더러운 기업이다. 내 목숨을 돈과 바꿔야 한다? 글쎄.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만약, 내가 삼성에 입사하게 된다면 나는 평생동안 부끄러워하며 살 것 같다. 삼성은 정확하게 내 신념과 정 반대에 서있는 기업이다. 신념을 꺾고 사는 삶이라, 난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그 안에서 노조 만든다 하면, 부모님까지 회유하는 기업이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곳에선 일하지 않을 거다.

전교조라는 낙인

4월 22nd, 2010

“개인의 사생활이다 vs 국민의 알 권리이다”

기본적으로 전교조 (및 교총, 기타 교원노조) 명단 공개 논란의 논지는 이렇게 갈리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노조에 가입을 했든 말든, 그것을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혹은 그런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어찌보면 참 간단한 논리들끼리 싸우는 모습이다. 알 권리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내가 전교조라는 게 밝혀지는 게 부끄러워?” 물론, 얼토당토 않은 논리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취향이 밝혀지는 게 부끄러워서 커밍아웃을 대놓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항상 그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 사람들은 대개, ‘하리수’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0.1초도 되지 않은 짧은 찰나에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기억해낸다. ‘홍석천’이라는 이름은 어떤가? 바로 ‘게이’라는 단어가 기억날 것이다. 하리수와 홍석천에게 자신이 각각 트랜스젠더, 그리고 게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비중으로 다가올 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심어진 하리수와 홍석천의 아이덴티티는 90% 이상이 트랜스젠더, 게이와 같은 그들의 성적 취향이다. 일종의 낙인 효과다. 요새는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기사를 쓰는 것 같진 않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리수와 관련된 기사의 주어는 ‘연예인 하리수’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였다. 낙인 효과란 그렇게 무서운 법이다.

밝혀지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학부모들, 특히 극성 학부모들의 시선이다. 선생님이 전교조라는 사실을 알 때와 모를 때는 이렇게 달라진다. 내 아이의 성적이 내려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전교조는 아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이에게서, 혹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성적이 내려갔는데, 선생님이 무려 전교조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주 쉽게, ‘역시 전교조라 공부대신 다른 걸 많이 시켜서 그런가봐.’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통 공부를 ‘빡세게’ 시킨다는 이미지와는 영 동떨어져있는 전교조라는 단체의 이미지, 그리고 ‘우리 선생님은 전교조였지’라는 낙인 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전교조 공개가 당신의 잘난 신념이다, 하면 아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건 한 단체 말려 죽이기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 문제라는 것을 그 잘난 의원님은 아셔야 한다. 전교조를 박살내는 게 당신의 목표였다면, 당신은 일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기억해야 할 거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포퓰리즘, 마녀사냥 그 자체다. 남의 신념을 박살낼만한 권리라는 것을 민주주의 사회는 당신같은 일개 사회 구성원 1인에게 쥐어주지 않는다. 당신은 틀렸다. 그건 이미 50년 전, 미국의 매카시가 증명해줬다. 아니, 이제부터의 역사가 증명해 줄 거다.

뉴데일리

4월 21st, 2010

병신도 이런 병신들이 없다. 이새끼들은, 그냥 개새끼들이다.

욕을 해주는 것도 아깝지만, 이런 놈들에게 치밀한 반박을 준비하거나, 순화된 언어를 쓰기 위해 내 화를 삭히는 건 낭비라고 본다.

이런 놈들이 언론이라고 설치는 세상은 과연 옳은 세상일까? 앵똘레랑스 세력에겐 앵똘레랑스를, 이란 말의 뜻을 잘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하기야, 메인에 PDF 타블로이드라고 “전교조의 교육현장” “일하는 대통령 MB” 같은 걸 올려놓으면서 네거티브질에 대통령 똥꼬나 핥고 있는 놈들이 언론은 아니지. 사조직, 이익집단이라면 모를까. 자유민주주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병신들이 우리 언론이네, 외치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아?

여기서 기자질 하는 놈들은 부끄러움이란 게 있긴 한 놈들인지, 아니면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못 받아서 자기가 병신짓 하는 건지도 모르는 놈들인지 모르겠네.

음악 대량 구매

4월 19th, 2010

멜론 150곡 정액의 장점을 살려, 음악을 대량 구매했다.

Red Hot Chili Peppers – Stadium Arcadium.
Dani California는 딱 한 번만 듣고도 사람을 꽂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내가 Funky한 음악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그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켜주는 앨범.
역시 뮤지션은 나이와 경험이 쌓여야 하는겨(…)

Red Hot Chili Peppers – Californication
Tnx to Genius(…)

Radiohead의 Pablo Honey. Creep만 듣기는 좀 부끄럽지 않나 싶어서 ;;
뭐 어차피 내가 듣는 라디오헤드 음악은 주로 <OK Computer> 앨범이긴 하지만..

Radiohead의 The Bends. 겸사겸사.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의 셀프 타이틀 앨범.
거의 축소지향의 절정을 보여주는 거 같은데. 이런 스타일의 음악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The Velvet Underground의 셀프 타이틀 앨범.
솔직히 위에 적어놓은 건 좀 허세고, 하이킥 때문이라고 말 못함.

Jamiroquai – Emergency on Planet Earth. 이런 음악 좋아합니다.

Jamiroquai – The Return of the Space Cowboy. 이런 음악 좋아합니다. (2)

Jamiroquai – Synkronized. 이런 음악 좋아합니다.(3)

Jamiroquai – A Funky Odyssey. 이런 음악 좋아합니다.(4)

Jamiroquai – Dynamite. 이런 음악 좋아합니다.(5)
아무래도 내가 Funky한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Travelling without moving 앨범이 워낙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고.

그냥 옷 벗어라

4월 15th, 2010

기사 링크 :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416095.html

인권위보다 사법부가 우리나라에서는 인권 전문가다. 우리가 의견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 – 김양원 인권위원

잘나신 인권위원이 한 말이란다. 그걸라면 인권위원 왜 하냐? 인권 전문가들이 모여서 인권의 관점으로 가부를 따진다는 인권위원회가, 겨우 한낯 사법부만도 못한 단체다, 난 그거밖에 안되는 병신이다, 라고 말하고 싶으면 굳이 인권위원 하는 이유가 뭐야?

한자리 꿰차서, 나중에 뭐 좀 해먹을라고? 잘났다. 오랜만에 그 말이 떠오른다. “직무 유기 아닙니까? (중략)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