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때로는 분노하며’ category

유전무죄

12월 29th, 2009

돈만 많으면 뭘 못하니.

불법행위는 눈감아줄 수 없다고? 여태까지 너네 행동이 좀 더러워서 그 말빨이 안 서긴 했는데, 오늘의 사면 결정으로 그 말빨은 안 서는 게 아니라 무너져버리는 수준이구나.

더럽다. 시대유감이나 들어야지.

12월 3rd, 2009

그들이 말하는 법이 자못 무서워 보일 때가 있다. 마치 자신은 한 마리의 순한 양인 양, <PD수첩>에게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그들의 보도를 하나하나 곱씹어 이것은 허위사실 유포네, 이것은 명예훼손이네 식으로 빨간 펜을 들어 보도에 난도질을 할 때 – 그들의 법이 실제 법과 다르다는 믿음은 여전히 지니고 있지만 – 나는 그들의 법이 참 매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망언’을 신문 기사로 접했다. 그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봤다. “지금 지구상에서 이런 식으로 파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 이건 당장 독일의 오펠사를 포함해,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는 파업을 숨긴 ‘허위사실 유포’ 아닌가?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이런 식으로 말했을 때 자유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근거에 (논리적이든, 팩트에서든) 오류를 지닐 수 있다는 건 자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류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라는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논쟁이 성립할 수 없다. 누구나 오류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므로, 법과 상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는 시도 자체를 주저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돼서는 변증법이 효력을 발하지 못한다. 정과 반이 충돌하질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류는 지적해서 고쳐나가야 할 문제지, 처벌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현 정부는 자신에 대해 반발하려는 세력을 그렇게 처벌하려 하는 것일까? 그 특유의 독선과 아집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정부는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받으시오’ 따위의 수준 높은 논쟁의 규칙은 염두에도 없다. 변증법, 그것도 염두에 없는 것 같다. 이 정부와 닮은 집단이 세상에 있었나? 많았다. 그중 그들과 가장 비슷한 집단은 중세 기독교일 것이다. 교회에 반대하는 것은 곧 죄였고, 종교재판에 처해져야 했던 것처럼, 이명박에게 반대하는 것은 죄인 모양이다. 이명박에게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겠지. 장로님이니까.

이건,

12월 1st, 2009

이건 절대로 납득할 수 없다. 아니, 해서도 안된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지독한 원칙론자처럼 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칙이 없다면 원칙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원칙에 대해 바위지기와 유저들 사이의 논의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논의를 지켜보다 슬슬 정리되는 것 같으니 물타기 한다, 이게 정말 앞으로 몇십년 후까지 내다볼 수 있는 판단인가? 나는 여기에 대단히 회의적이다. 이래가지고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현 정부의 일처리 방식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점차적으로 떠나려 한다. 아무리 사회 분위기가 이런 것에 무심하게 흘러간다 해도, 배워먹은 사람들까지 이래선 안 되는 법이다.

굿바이, KBS

11월 20th, 2009

확실히, 언젠가부터 KBS를 즐겨 본 기억이 없다. TV를 틀면 돌리는 채널은 대개 케이블이었고, 챙겨보는 방송은 무한도전, 라디오 스타 정도가 전부다. 왜냐? 일단 재미가 없다. 내가 만족하며 볼 수 있는 방송이 별로 없다. KBS 뉴스 특유의 언제나 애매한 논조도 그닥 내 입맛에 맞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꼭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KBS에는 PD수첩도, 뉴스 후도, 100분 토론도 없다. 공영방송이면 마땅히 갖춰야 할 언론으로서의 비판 기능이 죽은지 오래다. 이병순의 KBS 장악 이후, KBS에는 미디어 전망대도, 시사투데이도 없었다. 반쪽자리 공영방송인 MBC가 이렇게 공영방송 역할을 잘 할 때, KBS는 우린 공영이 아니라 국영방송이라는 듯이, 프로파간다 머신이 되고 말았다.

오늘, 아니 어제, KBS가 이명박 캠프 출신의 김인규에게 넘어갔다. 더러운 세상이다. 내가 괜히 이명박을 진정한 의미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다.

p.s. 신뢰도 1위 하던 정연주의 KBS가 그립다. 존경할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지만, 적어도 그는 공영방송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는 알고 있었지 않았나.

우주로 간 진성호

10월 25th, 2009

최근 국정감사에서 김구라의 방송을 보며 “세계 어느 나라 공영방송에서 청소년들이 보는 시간에 욕설이 나오느냐“며 한탄했다는데, 글쎄. 우선 청소년들의 대화의 절반 이상에 욕설이 섞여있는 실태 조사를 안 하는 불쌍한 모습은 둘째 쳐도, 미국 방송만 봐도 그 말이 안 나올텐데. 진성호씨는 대체 어느 행성에 사는 사람일까?

이뿐만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정치인들이 다채로운 순간에 우주로 간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대체 어느 나라에 이런 일이 있나’ 하고 반문했다 (그들이 그렇기 숭상하는) 미국의 예 하나로 우주의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집회/시위에 관한 것만 해도 그렇지 않았나. 대체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처럼 시위를 허용해 주냐고 물었다가, 미국과 프랑스(얘들은 무려 방화까지 하지 않나!)의 예에 바로 꼬리를 내리지 않았나. 분명히, 조금 조사만 하면 그게 아니란 걸 알만한 사안에서, 왜 그렇게 큰 소리를 칠까?

이유는 뻔하다. 그렇게 자극적인 발언을 하면 바로 미디어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겨레 같은 신문은 이런 걸 당연히 부정적으로 보도하며 반례까지 친절하게 소개해주거나, 아예 소개하지 않겠지만, 그런 신문의 독자들은 그들이 노리는 지지층이 아니다. 결국 문제는 조중동이다. 이 신문들은 그걸 좋다고 받아쓰기 할 것이고, 이들의 발언을 파헤치며 일일이 반박하는 건 그 신문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결국 이들에겐 그런 ‘막말’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손해도 아니니, 일단 지르고 보는 게 아니겠는가.

김구라의 막말도 ‘일단 지르고 본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의 막말에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그의 지위는 오피니언 리더와 거리가 멀며, 그가 무슨 말을 한다고 그 말이 정책에 반영된다거나,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말은 책임에서 자유롭고, 그의 말의 파급효과도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정치인의 막말은 이와 다르다. 정치인은 여론을 선동하고, 그 여론에 힘입어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르게 만드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막말을 해서 쓰겠나. 진성호씨는 제발, 그런 말을 하기 전에 과연 막말로 퇴출당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도

9월 2nd, 2009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학교에서 머리가지고 장난치는 거다.

어떤 길이 인간을 가르치는 길인가, 어떤 것이 미학적인 것인가, … 아무리 많은 차원에서 생각해봐도 이건 인정할 수가 없다.

내 죽을 때까지

7월 22nd, 2009

한나라당, 너네들 찍나 봐라.

다음 선거 기대해라. 촛불시위도 좀 기다려주고.

연세대학교

6월 20th, 2009

며칠 전까지는 이런 총학생회가 있는 학교에 다닌다는 게 자랑스러웠지만

어제, 그리고 오늘처럼 이 학교 다닌다는 게 부끄러웠던 날들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저 화내며 술 마시는 것밖에 없다는게 참 안타깝다.

나는 너무 힘이 없다.

김지하

5월 29th, 2009

“작가가 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 ((박현희, 「좌우를 오고 갈 자유는 가능한가」, <한겨레21> 762호에서 재인용.))

애석하게도 김지하가 말하는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는 자기가 얼마나 무식한지 드러내는 자살골을 몇 개를 넣을 건지 심사숙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튼 그는 그렇게 말했다. <부산일보> 칼럼에서 그는 말한다. “봉하마을에서 악을 악을 쓰는 맑스 신봉자들” ((김지하, 「[김지하 칼럼] 나의 이상한 버릇」, <부산일보>, 2009년 5월 28일자.)) 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아, 김지하, 이렇게 무식한 사람이었구나.

그냥, 이 사람을 보면, 요샌 그저 안쓰러운 마음만 든다. 그가 원하는, ‘생명’이라는 거대한 담론 하나에 완전히 파묻힌 모양이다. 그러고는, 모든 가치를 완전히 망각한 모양이다. 자신의 과거마저 부정한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호랑이 담배 먹던 것” ((위의 글)) 이란다. 안쓰럽다. 이 사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망가졌다.

- 덧붙여. 김지하 자신은 자신의 생각을 동전 뒤집기 게임처럼 뒤집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니다. 그건 책임의 문제다. 글쟁이는 자신의 말과 글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어줍잖게 진중권씨 비판하며 현대미학따위 전혀 모른다는 걸 만방에 보여줬던 그 말, 정말 김지하 자신은 책임 질 수나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여기서 이미 그의 글쟁이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믿을 수 없는 글쟁이는, 그저 양치기 소년일 뿐이다.

SM

5월 29th, 2009

그냥, 보수세력엔 참 SM이 많은 것 같다.

누굴 까지 못해 안달인 ㅂ아무개란 놈도 있질 않나, 아무래도 악플 좀 받고 싶어서 안달이신 것 같은 여러 분이 있질 않나.

더 말하기도 싫다. 이런 인간들은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리액션이 없는 액션은 재미가 없거든. 그 싸이코들한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