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때로는 분노하며’ category

친노, 집권은 안 된다

6월 15th, 2010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받든다는 자들이 이래서 되나 싶다. 도무지 포용력이란 건 찾아볼 수도 없고, 관용이라는 것도 찾아볼 수가 없고, 비전은 더더욱 없다. 노무현이 했던 말이었던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그들이 실현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 놈들은 최소한 노무현 2.0이라도 만들어도 모자랄 판국에 노무현 0.9, 아니 노무현 0.1 수준에서 만족하고 있다.

찌질한 사람들이다. 왜 국민참여당이 패배했겠나. 노무현 극성 지지층 정도만 포용할 수 있을 득표율 수준으로. 그건 그들에게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국민이 간접적으로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사는 세상”이란 두 단어 말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게, 다른 당과 대체 뭐가 다른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얘네는 지금 이 상태에선 절대 집권하면 안 된다. 장담한다. 정체성따위 없이 가다, 이도 저도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버린 열린우리당꼴 날 거다. 얘네 하나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이명박 같은 사람이 또 집권할 거다. 한심하다. 집권했을 때에 대해서 비전을 세운다는 게, 그네들이 한나라당 2중대라고 비열하게 비난하고 있는, 그나마 비전은 나름대로 세우고 있는 진보정당만도 못하다. 정당의 교과서적 의미로 봤을 때, 이건 무능이고, 직무유기다.

그 사람들, 벌써 이 말을 잊은 건 아닌가 싶다. 타겟과 의미는 다르다지만, 오랜만에 한 번 적어본다.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P.S. 너네는 한 7년 전부터 계속 <한겨레> 끊는다 끊는다 거리는데, 솔직히 식상하다… 좀 참신한 것 좀 해봐.

꿈을 바꿨던 날

6월 10th, 2010

‘경찰 아저씨’도 되고 싶었고, 의사도 되고 싶었고,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결국에 내가 골랐던 건 과학하는 교수였었던 것 같다. 2005년 12월 15일 전까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과학을 할 거야. 난 이 학문만 죽어라고 팔 거야. 그래서 교수까지 할 거야.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꿈꾸는 건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교수를 하면 그걸 자연스레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2005년 12월 15일, 나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사람들에겐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겐 아주 단편적인 지식만 넘겨줄 수 있는 게 교수의 한계였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교수의 가장 큰 특징이었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교수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과학자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쳤던, 황우석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황우석에게만 분노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그 당시에, 나름대로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12월 15일 전까지는 배아복제 자체가 다 거짓말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 그냥 윤리적인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글을 썼다. 처음으로 악플이라는 걸 받아봤다. 화가 났다. 12월 15일이 지나고 나서, 내가 맞았지 하는 약간의 승리감과 함께, 그 사람들은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하고 생각했다. 답은 언론이었다. 인터넷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싶으면, 차라리 여러 방면에 대해 깊이 파고들 줄 아는, 통찰력을 지닌 기자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걸 못 하면, 사람들은 거짓 속에 살고 말 테니까. 특히, 인터넷이라는 놈은 좋은 말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퍼트리는 데에도 재능이 있으니까. 스티브 잡스가 말했다던, “나는 우리나라가 블로거에 의해 움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와 관계 없이, 뉴스는 통찰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 걸러지고 또 걸러져야 한다. 편집돼야 한다. 지금 언론이 통찰력에 문제가 있고, 편집의 민주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잘 안다. 그렇다고 뉴스를 완전히 오픈한다고 언론이 한 단계 발전한다, 그건 틀린 말이다. 우리는 통찰력 있는 사람을 언론에 세워야 하고, 민주적인 언론 편집을 이끌어야 한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만 고치면 된다. 그러면 되는 거다.

그래서 난 지금 사람들이 상당히 걱정스럽다. 타블로 관련 얘기 말이다. 블로그를 통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넘쳐난다. 통찰력 따위는 없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서류를 들이대도 부족하다고 떠든다. 이러다 타블로가 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이러나. 지못미, 지못미. 이러고 다닐 건가?

그네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타블로가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뭐 그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쓴다고 볼 사람도, 믿을 사람도 아니지만, 타블로도 타블로 나름대로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과연 그네들이 믿고 있는 것 중 상당 부분이 거짓말이라는 걸, 유언비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네들이 어떤 충격을 받을지 참 기대된다. 충격도 못 받는다면, 그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하는 거겠지.

개똥 철학

4월 29th, 2010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양보해도 삼성이 주장하는 무노조라는 거, 그거는 개똥 철학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걸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웃기고, 그런 주장을 했던, 기업가로서는 반드시 챙겨야 할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빵점짜리인 사람을 훌륭한 기업가라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신문이 우리나라 신문 업계 2위를 다툰다는 사실도 참 부끄럽다.

무노조, 그건 안 된다. 아니, 그게 삼성이 주장하는 대로 노조를 만들 필요가 없는 기업으로서의 ‘비노조’ 경영이라면 모를까. 노동자들이 필요성을 느껴서 노조를 만들려 해도 그걸 억지로 막는, ‘비’노조를 넘어선 ‘불’노조를 한다면, 그건 틀린 거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월경을 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라면, 암에 걸려도 호소할 데 없다면, 그래서 외부 언론과 접촉할 용기씩이나 낼 필요가 있는 기업이라면, 그런 기업은 실패한 기업이다. 아니, 더러운 기업이다. 내 목숨을 돈과 바꿔야 한다? 글쎄.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만약, 내가 삼성에 입사하게 된다면 나는 평생동안 부끄러워하며 살 것 같다. 삼성은 정확하게 내 신념과 정 반대에 서있는 기업이다. 신념을 꺾고 사는 삶이라, 난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그 안에서 노조 만든다 하면, 부모님까지 회유하는 기업이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곳에선 일하지 않을 거다.

전교조라는 낙인

4월 22nd, 2010

“개인의 사생활이다 vs 국민의 알 권리이다”

기본적으로 전교조 (및 교총, 기타 교원노조) 명단 공개 논란의 논지는 이렇게 갈리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노조에 가입을 했든 말든, 그것을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혹은 그런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어찌보면 참 간단한 논리들끼리 싸우는 모습이다. 알 권리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내가 전교조라는 게 밝혀지는 게 부끄러워?” 물론, 얼토당토 않은 논리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취향이 밝혀지는 게 부끄러워서 커밍아웃을 대놓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항상 그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 사람들은 대개, ‘하리수’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0.1초도 되지 않은 짧은 찰나에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기억해낸다. ‘홍석천’이라는 이름은 어떤가? 바로 ‘게이’라는 단어가 기억날 것이다. 하리수와 홍석천에게 자신이 각각 트랜스젠더, 그리고 게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비중으로 다가올 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심어진 하리수와 홍석천의 아이덴티티는 90% 이상이 트랜스젠더, 게이와 같은 그들의 성적 취향이다. 일종의 낙인 효과다. 요새는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기사를 쓰는 것 같진 않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리수와 관련된 기사의 주어는 ‘연예인 하리수’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였다. 낙인 효과란 그렇게 무서운 법이다.

밝혀지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학부모들, 특히 극성 학부모들의 시선이다. 선생님이 전교조라는 사실을 알 때와 모를 때는 이렇게 달라진다. 내 아이의 성적이 내려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전교조는 아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이에게서, 혹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성적이 내려갔는데, 선생님이 무려 전교조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주 쉽게, ‘역시 전교조라 공부대신 다른 걸 많이 시켜서 그런가봐.’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통 공부를 ‘빡세게’ 시킨다는 이미지와는 영 동떨어져있는 전교조라는 단체의 이미지, 그리고 ‘우리 선생님은 전교조였지’라는 낙인 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전교조 공개가 당신의 잘난 신념이다, 하면 아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건 한 단체 말려 죽이기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 문제라는 것을 그 잘난 의원님은 아셔야 한다. 전교조를 박살내는 게 당신의 목표였다면, 당신은 일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기억해야 할 거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포퓰리즘, 마녀사냥 그 자체다. 남의 신념을 박살낼만한 권리라는 것을 민주주의 사회는 당신같은 일개 사회 구성원 1인에게 쥐어주지 않는다. 당신은 틀렸다. 그건 이미 50년 전, 미국의 매카시가 증명해줬다. 아니, 이제부터의 역사가 증명해 줄 거다.

뉴데일리

4월 21st, 2010

병신도 이런 병신들이 없다. 이새끼들은, 그냥 개새끼들이다.

욕을 해주는 것도 아깝지만, 이런 놈들에게 치밀한 반박을 준비하거나, 순화된 언어를 쓰기 위해 내 화를 삭히는 건 낭비라고 본다.

이런 놈들이 언론이라고 설치는 세상은 과연 옳은 세상일까? 앵똘레랑스 세력에겐 앵똘레랑스를, 이란 말의 뜻을 잘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하기야, 메인에 PDF 타블로이드라고 “전교조의 교육현장” “일하는 대통령 MB” 같은 걸 올려놓으면서 네거티브질에 대통령 똥꼬나 핥고 있는 놈들이 언론은 아니지. 사조직, 이익집단이라면 모를까. 자유민주주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병신들이 우리 언론이네, 외치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아?

여기서 기자질 하는 놈들은 부끄러움이란 게 있긴 한 놈들인지, 아니면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못 받아서 자기가 병신짓 하는 건지도 모르는 놈들인지 모르겠네.

그냥 옷 벗어라

4월 15th, 2010

기사 링크 :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416095.html

인권위보다 사법부가 우리나라에서는 인권 전문가다. 우리가 의견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 – 김양원 인권위원

잘나신 인권위원이 한 말이란다. 그걸라면 인권위원 왜 하냐? 인권 전문가들이 모여서 인권의 관점으로 가부를 따진다는 인권위원회가, 겨우 한낯 사법부만도 못한 단체다, 난 그거밖에 안되는 병신이다, 라고 말하고 싶으면 굳이 인권위원 하는 이유가 뭐야?

한자리 꿰차서, 나중에 뭐 좀 해먹을라고? 잘났다. 오랜만에 그 말이 떠오른다. “직무 유기 아닙니까? (중략)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안상수

3월 25th, 2010

큰 어른이 가신 날, 마치 기다린 양,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큰 어른이 결코 듣고싶지 않았을 소식 하나를 던졌다. 봉은사 직영화 말이다. “좌파 척결”의 화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또 한 건 했다. 본인은 한사코 부정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말이 그다지 납득가지가 않는 건 사실이다. 직접 만난 적도 있는 사람에게 “난 저런 사람 알지도 못한다”라니. 그런 말 하면 쓰나.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볼 때 드는 느낌이 있다. 대체 무엇이 이 사람에게 증오의 마음을 불어넣었나? 도대체 왜 이런 사람은 ‘척결’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언급하며 핏대를 세우는 걸까? 안쓰럽거나 한심하다. 만약에 그 사람이 잘못된 교육 때문에, 잘못된 사회 때문에 그렇게 됐다면 안쓰러운 것이고, 출세 좀 하자고 대통령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라면 한심한 거겠지.

정치 혐오

3월 19th, 2010

정치 혐오라는 것은 민주 시민의 의무를 저버리는 범죄 행위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싫어하는 기득권자, 바로 그 사람들은 정치 혐오를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게 그들한테는 이득이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회피가 아니라 참여다. 당신 하나만 사는 세상은 아니지 않나. 당신이 ‘시크하게’ 정치 혐오를 하고 있는 그 순간, 회피하고 있는 그 순간, 사회의 보살핌이, 체제의 개선이, 혹은 연대가 필요한 그 누군가는 처절히 절망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 되지 말란 법은 이 세상엔 없는 것 같다.

사형제

2월 26th, 2010

그렇다. 헌재가 무슨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아니고. 이 문제를 헌재님이 풀어줄거야, 라고 기대를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결국 헌재는 헌법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기관이니까. 그들이 선출된 권력인 것도 아니고.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이제는 제발, 없애자. 그럴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런 놈들 먹여살려주기 싫다, 고 말하기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이 세상은 그들의 과거에 너무 비정하지 않았나.

남중, 남고

1월 26th, 2010

남녀공학만 나와서 그런지, 남중과 남고 특유의 문화에 이질감을 넘어서 경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렇지. 그 뜨거운 시기에, 자기들과 비슷하게 성적인 에너지를 분출을 못하는 친구들과 6년 동안 뒹군다는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남중-남고를 나온 친구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내겐 일종의 소름돋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TV에 포르노를 틀어놓는다니. 그런 건 내가 있었던 곳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 경외감을 잠시 내려놓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건 일종의 안타까움이다. 이성에 대한 뒤틀린 관심을 건강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충동적으로 틀어놓는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가?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배워야 할 ‘배려’라는 것을 배워야 할 시기에, 몸으로 체득할 시기에, 그런 것들을 배울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 사회화라는 것은 이런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여자애들이 내신을 휩쓸어간다”는 보잘것 없는 이유로 남녀공학이라는 좋은 배움의 기회를 기피하는 것이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남자반, 여자반을 굳이 나눠가며 금남, 금녀의 구역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남녀를 나눠놓으면 학력이 향상된다? 학력 향상? 그런 건 개나 줘라. 그깟 미적분 좀 더 잘한다고 세상을 잘 살아가는 건, 암기과목에서 암기할 거 더 많이 외웠다고 세상을 잘 살아가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명문대가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려심이다.

– 그래서, 나는 중학교때 학원에서 처음 만났던 그 친구가 그렇게 스무번이나 실수를 저지른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인간은 못되도, 그 누구도 괴물이 되지 않을 기회는 얻을 수 있어야 했다. 사족이지만, 물론 이 글이 남중-남고를 나온 사람이 다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혹은 가정교육에 따라 남중-남고를 나온 사람도 충분히 배려심을 배울 수 있다. 아니, 대부분 그런 걸 배운다. 하지만, 내가 못 본 3년 사이 유난히 마초같이 변했던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그런 배려심을 배울 기회가 지금까지 없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