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생각노트

블로깅

예전에 한참 블로그를 열심히 할 때. 그 때 나는 어린 학생이었다. 아직 채워야 할 것 투성이였고,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내용을 열심히 썼다. 당연한 내용,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 그러나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내용. 내가 하루하루 배워가는 것과 ‘현실’이란 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꽤 강렬했다. 그게 내가 그 때 블로깅을 했던 이유였다.

언젠가부터 블로그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피드백이 줄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순전히 관심을 받기 위함이었다면 글을 그렇게 열심히, 퇴고와 퇴고를 거쳐 쓸 필요는 없었다. 생각보다 자주 내 블로그에 들어왔다. 그러나 글쓰기 창 앞에서 느낀 것은, 하얀 화면을 채울 내용이 내 머릿속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글쓰기라는 활동은 나와 멀어졌다.

왜 그랬을까? 당연한 소리를 쓰는 것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차피 교과서대로 흘러가지 않을 ‘현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한 내용을 짚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액션을 취하는 게 우선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내 생각은 조금 바뀌고 있다. 하루하루 참기 힘든 말들이 오가는 상황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길을 잃을 것 같다.

블로그를 연지도 벌써 9년째다. 언젠가부터 시간만 셌던 것 같다. 그래도 글을 쓰긴 써야 한다. 다만, 예전과는 굉장히 다른 글이 쓰여질 것 같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누군가와 싸우기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자유일까?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이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소유의 자유라는 황당한 답이 돌아올 것 같아 허망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신다는 분 치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잘 아는 분이 없다는 것은 몇십년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곳에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열심히 적어보았으나, 손만 아플 것 같아서 결국 다시 지워버렸다. 그만큼 그들의 머리와 귀는 닫혀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당신들은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하나도 발전하지 못했냐고. 그리고 왜 아직까지도 리더를 자처하냐고. 애석하다. 저들이 변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는 사실마냥, 굳건해보인다. 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더라도, 누군가는 그들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 생각을 멈출 것이다.

언젠가는. 먼 훗날의 언젠가는 그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의 정치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먼 훗날엔, 지금의 어줍잖은 자유민주주의자들도 냉정한 평가 앞에 무릎꿇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큐레이션

인터넷이 준 선물은 콘텐츠의 양이다. 그 양에 질이 담보돼있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오늘 든 생각은, 그게 진짜 문제는 아니라는 거였다.

신문, 책은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웹은 다르다. 페이지 하나가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신문은 매일 100개가 넘는 기사를 제공한다. 웹페이지 100개를 방문하는 것? 그건 결코 쉽지 않다. 나만 해도 RSS에서 기사 50개만 올라와도 읽기가 싫어진다.

신문의 최대 강점은 기사의 경중에 따른 시각적 편집이다. 큐레이션이 그들의 최대 강점이다. 그런데, 신문보다 적은 기사 수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웹에서 큐레이션의 중요도는 신문보다 더 높다. 하지만 아무도 큐레이션을 잘 하지 못 한다.

신문은 기사 생산자의 수없는 논의를 토대로 논조를 만든다. 그리고 논조를 바탕으로 큐레이션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한다. 웹은? 웹이 그렇게 했다가는 ‘편향성 논란’이 일어난다. 요즘 기성 언론이 포털 사이트를 때리는 것을 보라. 이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큐레이터와 생산자가 분리돼있고, 큐레이터가 생산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밥그릇 싸움에서 생산자가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언론이 말하는 ‘포탈의 편향성’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페이지뷰에 따른 이익 싸움이다.

그렇다면 생산자가 직접 웹에서 큐레이션을 할 때, 그게 좋은 결과물을 낸 적이 있는가? 생산자가 웹 사이트의 큐레이터가 됐을 때, 그들은 웹의 낮은 광고 단가 때문에 최악의 선택을 한다. 기실 진짜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신문사다. 그들의 홈페이지를 보라. 당신은 그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싶은가? 악성 코드를 담은 광고와, 기사를 가리는 광고를 감수하고?

결국, 오늘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정보를 얻는 데엔 신문이, 책이 더 낫다. 문맥을 파악하는 데엔 웹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신문과 책은 텍스트 자체보다 문맥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고사당할 것이다. 어떻게든 고민해야 한다. 나도 그 고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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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생활은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보는 신문에 따라 성향은 달라진다.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관심사 역시 매우 다르다. 시작페이지가 네이버인 사람, 다음인 사람, 구글인 사람은 각각 웹 서핑의 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홈스크린에 어떤 앱이 있는지 역시,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블로그 RSS 리더인 “Reeder”를 3페이지 정도로 옮겨놓고 있었다. 그동안 읽지 않은 블로그 글이 몇백개가 쌓여 있었다. 정보 습득은 포털이나, IT 뉴스 페이지를 오가며 하고 있더라. 자연스레 브라우저 사용 비율이 높아졌고, 쓸 데 없는 연예뉴스를 보는 빈도 역시 높아져 있었다. 이 변화는 그대로 컴퓨터 이용 패턴에도 적용됐다. 작은 접근성의 변화가 전체적인 컴퓨팅 패턴까지 바꾼 셈이다.

접근성은 우리의 습관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크다. 뭔가 지루한 패턴이 반복된다고 느껴지면, 의도적으로 환경에 변화를 줘보자. Dock을 바꿔보든, 작업표시줄을 바꿔보든, 바탕화면을 바꿔보든, 스마트폰 홈스크린을 바꿔보든. 아마 생각보다 많은 게 달라져있을 것이다.

완성

시도는 무던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으로 ‘완성했다’고 느낀 것을 내보내기는 너무 어렵다.

20대 초반인 놈이 나이를 몇이나 먹었다고 이러는진 모르겠다. 손 가는대로 쓰고 쓱 훑어보고 글을 올렸던 게 옛날의 나다. 지금의 나는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결국 멈춘다. 누르기 좋게 파란색으로 칠해진 Publish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완성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만 사로잡혀있다. 그 강박에 사로잡힌지 4년째다. 글이 올라오지 않으니 아무도 이 곳을 찾지 않는다.

왜 이럴까 잘 생각해보면, 결국 이건 내 방식의 문제다. 굳이 글의 개요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글로 써가며 잡지 않아도 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내가 요구하는 수준은 높아졌다. 하지만 내 방식은 바뀐 게 없었다. 논리 전개가 매끄러운 글을 쓰자고 다짐해놓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얀 화면에 키보드를 두드린다. 주제의식은 있다. 하지만 밑그림이 없다. 글은 방향을 잃는다. 같은 말을 또 반복한다.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예전엔 어떻게 글을 썼을까? 애석하게도, 예전의 내 글은 지금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글이다. 그땐 내 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글이 무엇인지 몰랐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숙련된 사람이면 개요같은 것은 굳이 정확히 세우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배운 적은 없다. 나 혼자 자만하며 그렇게 착각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못난 것은 맞다. 하지만 내 가장 큰 실수는 어쩌다 몇 번 잘났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 한없이 자만한 것이다. 다시 자만하면 결국 다시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말 거다.

그래서 결국, 다시 또 새로워지자는 다짐을 한다. 이렇게 다짐만 한지, 문제의식만 가진지 4년째다. 문제의식만 가진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걸 알아차린지도 4년째다. 또 한 번 “달라져야한다” 라고 쓴다. 몇 번째 다시 쓴 것인지는 셀 수도 없다.

규칙적으로 글을 쓰자, 기본을 지키자는 나와의 약속을 다시 한 번 한다. 셀 수 없이 많이 깼던 약속이다. 다시는 깨고싶지 않다.

짧은 글

같은 짧은 글도 ‘촌철살인’이란 말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글로 보일 수도 있고, 근거 없는 비방처럼 보일 수 있다.

여태까지 내가 트위터에 남겨왔던 글들은 후자였던 것 같다.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다시

한동안 뜸했습니다.

이제 이 블로그에 찾아올 분도 거의 없겠죠? 예전보다 편한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글을 쓴다는 게 조금 힘들었습니다.

“내 글이 어떻게 보여질까?” 라고 생각해보니, 난 다른 사람들에겐 특별하지 않은, 그저 그런 사람 중 하나이지 않나. 다른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글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글을 쓰는 부담이 줄어들때 쯤, “나에게 내 글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이렇게 거칠었나?’하는 생각도, ‘너무 멋있어 보이려고 글을 지나치게 다듬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글쓰기를 피할수록, 내 생각은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괜히 인터넷 댓글이나 뒤져보며 비웃기나 하는 내가 저들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봤습니다. 결국 내가 나를 표현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글을 쓰려 합니다.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려 합니다. 그게 누군가에겐 허세처럼 보이겠죠.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겐 제가 표현하는 게 어떤 것이든, 아무런 힘 없이 축 쳐져있는 지금보단 나을 겁니다.